“여기 열감지 카메라 좀 보세요. 빨갛게 달아오른 부분이 보이시죠? 전선이 낡아 전기열이 방출되고 있는 겁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감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전기 청소업체 신안이앤지 이상진 부장)
최근 경기 성남 통신업체 전기시설실. 이곳에 모인 청소 인력 장비가 생소하다. 적외선·열감지 카메라에 에어건, 일반용 보다 흡입력이 30배나 강한 3.5마력 고압 청소기까지 마치 전투장비를 연상케하는 첨단기기들이 총동원됐다.
최근 대형 화재, 도로함몰(싱크홀) 등 각종 재난 사고가 잇따르자 첨단 안전 ‘틈새 산업’이 태동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설립된 전기안전 전문업체 신안이앤지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7만 볼트 전압에서도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 세정액을 특허 개발해 전력을 차단하지 않고도 시설 청소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 김종오 신안이앤지 대표는 “지난해 대형 사고가 급증하며 시설 안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며 “올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배 이상 급증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예상치 못한 각종 사고가 급증하자 싱크홀 전문 탐사업체, 건물 균열 감지 어플리케이션(앱) 등 이색 산업도 국내 실물경제 한 축으로 등장했다.
싱크홀 탐사업체 지오글로버스는 최근 잇딴 도로 함몰 사고로 인해 ‘귀한 몸’이 됐다. 국내에 레이더로 땅속을 볼 수 있는 탐사능력을 갖춘 업체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손강희 지오글로버스 대표는 “2013년까지 지반조사 의뢰는 1건밖에 안 들어 왔지만, 지난해에는 9호선 주변에서만 6건 지반조사 작업을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건물균열 측정장비 업체 ‘웰트웨이브’는 지난해 핸드폰을 통해 균열을 재는 보급형 기기를 판매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종전 일본산 제품은 400만원을 호가해 대형 건설업체가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웠다. 안재성 웰트웨이브 대표는 “상품화 1년만에 한국도로공사와 건설업체에 제품을 납품했다”며 “스마트폰을 이용해 측정기 가격을 3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같은 움직임에 반색하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최근 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신종 안전산업을 육성해 내수를 자극하는 포석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미국 시장 조사기관 프리도니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전 산업은 2021년까지 연 평균 9%씩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국내 산업은 공공부문 시설 보수 등에서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토종 안전시장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산업부에 따르면 국내안전 산업 규모는 35조6000억원인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안전 산업 대부분(82%)이 소방·방재, 시설물 유지·보수 등 정부나 공공부문에서 발주하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첨단 소프트웨어, 컨설팅, 폐쇄회로TV(CCTV) 보안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장은 18%에 그친다.
그나마 전체 파이를 합쳐도 연 평균 7%씩 성장하는 세계 시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프리도니아와 산업부에 따르면 세계 안전 기업 서비스 매출은 2016년 2435억달러에서 2021년 3370억달러로 38% 급증할 전망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 매출은 같은 기간 587억달러에서 912억 달러로 55%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한국은 투자 부진에 역주행하고 있다. 국내 안전 산업 매출액은 54억달러에서 79억달러로 외견상 증가하지만, 아태지역 내 비중은 9.2%에서 8.7%로 거꾸로 0.5%포인트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세계 산업 성장 추세에 따라 선진국은 안전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은 민간 수요가 저조해 시장이 정체됐다”며 “앞으로 정부 투자를 확대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해 산업 발전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방산업에 편중된 안전 산업을 재편하고 정부 인허가권을 민간에 이양해 민간 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재난관리 전문가인 최상옥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실상 모든 부처가 안전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를 정리하지 않고 육성한다고 하는 것은 넌센스”라며 “안전 산업 진흥을 위해
정상만 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민간 산업은 그동안 당국이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분야”라며 “정부 진단에 첨단 산업 기술을 도입하는 등 지원책을 펴 토종 산업을 내수와 고용을 자극하는 한 축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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