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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가 조작된 조서에 서명하기를 강요하는 일본인 형사에게 울분을 토하며 한 말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노래하다 28세에 일본 감옥에서 순국한 '아름다운 청년'윤동주는, 단순한 시인이 아닌 총칼 대신 펜으로 식민지 통치에 반역한 진정한 애국자였습니다.
흔히 반역과 배신은 혼용돼 쓰이지만 다릅니다. 반역이 자신의 삶을 초개와 같이 던져 한 알의 썩는 밀알로서 새 시대의 막을올리려는 것이라면, 배신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믿음이나 도리를 저버리는 태도니까요.
그런데 연공서열이 엄격한 한국 정치에서 마당쇠 취급을 받으며, 거수기 노릇이나 하던 초선의원들이 요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81명이 야당이 반대하는 장관 후보자 3명에 대해 '1명이라도 잘라야 한다.'라고 공개 반발해 결국 박준영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이끌어 냈지요.
청와대와 당내 친문 주류 인사들은 '초선들이 군사작전하듯 대통령 인사권에 도전해 반역을 한 셈'이라며 불쾌해 했지만 결국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죠. 보수 정당인 국민의 힘에서도 소수인 호남 출신이 그것도 의원이 된 지 1년 밖에 안 된 김웅 초선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데 이어, 여성인 김은혜, 윤희숙, 원외인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거나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프랑스 과학자 파브르 대열벌레의 머리와 꼬리가 맞닿도록 원형 대열을 만든 뒤, 그 사이에 뽕나무 잎을 놓아뒀습니다. 그런데 이 곤충들은 눈앞에 먹이가 있는데도 서로의 뒤만 졸졸 따라가며 뱅뱅 돌기만 하다가 일주일 뒤 모두 굶어 죽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보스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가로 공천 같은 정치적 입지를 보장받는 '대열벌레 정치'를 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우리가 바라는 더 나은 세상은 불의에 굴종하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무모한 용기'와 '희생의 늪'을 지나야 비로소 찾아오지 않을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초선들의 반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