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4일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 센추리링크센터에는 3만7000여명의 인파가 모였다. 국적도 나이도 다양했지만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자본주의의 우드스톡'으로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이하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2박 3일 일정으로 열렸던 주총의 첫 시작은 워렌 버핏의 캐리커쳐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물론 3만7000명의 주주들은 환호하고 같이 춤을 즐겼다.
국내기업 주총은 어떨까. 3월 14일 118개사, 21일 662개사, 28일 497개사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날에 주총을 열었다. 이는 전체 상장사 1761곳의 72.5%에 달한다.
현장 모습은 더 심각하다. 재무제표 승인과 사내·외 이사 및 감사 선임, 이사 및 감사보수 한도 승인, 정관 변경 등에 걸리는 시간은 30여분 수준이다. 대기업의 경우 총수를 주총 현장에서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대다수 기업의 주총과 미국기업 주총의 모습은 다른 걸까.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교수)은 이 같은 관행이 이어지는데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먼저 자본시장법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며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은 회계연도 종료 이후 90일 이내고 금융당국은 주총 승인을 받은 사업보고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3월 안으로 주총을 열어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금융위원회 사업보고서에 기재해야하는 의무 항목 중에 하나가 '최근 3사업연도 중 배당금 총액, 배당수익률, 주당 배당금'인데 다수 기업이 배당 의결을 주총 승인을 받도록 정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주총을 열고 이를 확정해야하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주들은 투자기업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기 힘들고 주총 안건 분석조차 하지 못하고 주총 결과만 받게 되는 것"이라며 "사업보고서를 먼저 제출하고 주총을 그 뒤로 미루면 주주들이 경쟁 회사 등 많은 기업에 대해 정보를 풍부하게 얻고 서로 비교하며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이 같은 제도적인 한계를 바꾸기 위해 빠르면 올해 3분기쯤 공청회를 열고 관련 법안 개정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는 또 "우리나라와 상법이 비슷한 일본을 제외한 미국이나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 국가들이 사업보고서 제출 이후 주총을 열고 있다"며 "이런 이유로 미국, 영국, 독일, 호주에서 주총은 보통 두 달에 걸쳐 분산돼 있고 주주들의 주총 참석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 여겨 볼 것은 우리와 매우 흡사한 주총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초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면서 돈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주식으로 몰리면서 주총에 참석해 목소리를 높이고 활발한 주주제안이 이뤄지면서 기업들도 주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
박 원장은 또 다른 문제로 기관들의 의결권 행사 부실을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주총의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 주주와 투자자들은 의견을 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영진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주총인 반면 미국의 경우 외부 투자자들이 경영진을 감시하는 유일한 장이 주총"이라며 "우리 기관들도 힘을 합치면 충분히 영향력을 줄 수 있음에도 이해관계에 얽혀 투자자가 아닌 투자대상 기업의 이익에 더 충실하게 따른다는 것은 심각한 이해상충 구조"라고 지적했다.
즉 대기업 계열사인 자산운용사 등은 모 회사 주총 안건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노출돼 있다. 또한 계열사 관계가 아니더라도 금융 상품 판매 등 비지니스 관계로 엮여 있는 경우도 많아 기관들이 주총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등 선진국의 기관들은 투자기업 주총 안건의 14~15% 가량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기관들의 반대의결권 행사는 0.2% 수준에 그쳤다.
기업지배구조원은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등 기관투자자들이 어떤 주총 안건에 찬성하고 반대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포털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향후 해당 기관에서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기관을 감시할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박 원장은 "소액주주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고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를 활발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반대하는 것은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들이 반대 목소리만 높일 경우 주총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거부하는 것은 소액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막아 대주주에 대한 견제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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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를 채택한 곳은 45곳이며 이중 선박투자회사가 36곳, 한국주식예탁증서 형태의 외국업체가 5곳, 비상장사 3곳, 상장사 1곳 등이다.
[매경닷컴 최익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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