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오피스빌딩을 쓰던 회사들이 새 둥지를 틀고 있는 논현동 주택가. 단독주택 담벼락에 회사 간판이 붙어있다. [김재훈 기자] |
씨카코리아 관계자는 "월세를 수백만 원 아낄 수 있는 데다 직원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어 근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회사가 주택가를 파고들고 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초구 방배동, 용산구 이태원동, 마포구 서교ㆍ합정동 등 단독ㆍ다가구 주택이 몰려 있는 지역의 집을 통째로 매입하거나 빌려 사옥으로 쓰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강남 지역 오피스를 떠나 강북 도심이나 판교로 옮기는 반면 디자인, 출판, 광고제작, 건축설계 등 소비자를 직접 만나지 않는 기업 간 거래(B2B) 중소 규모 회사들은 가격이 저렴한 단독주택에 손을 뻗고 있는 것이다.
강남 논현로 이면도로에 위치한 주택가는 겉으로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3가구 중 1가구꼴로 회사 간판이 달려 있다. 단독주택을 허물고 상가 건물(근린생활시설)을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가 한창인 곳도 눈에 띈다.
마포구 서교ㆍ합정동 주택가에도 회사가 밀려들고 있다. 지하철 2ㆍ6호선 합정역 2번 출구 메세나폴리스를 끼고 뒷골목에 들어서면 단독주택에 둥지를 튼 패션ㆍ인테리어ㆍ디자인ㆍ출판 업계 회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학과지성사의 '문지문화원 사이'는 최근 30억원을 들여 6층짜리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서교동 J공인 관계자는 "홍대입구역 일대 집값이 오르면서 당인리발전소 인근이나 연남ㆍ망원동 일대 주택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도 인기다. 얼마 전 '경리단길' 이면도로에 있는 다가구주택 1층을 임차해 건축설계사무소를 차린 이승엽 씨(42)는 "15평 정도인데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강남이나 홍대입구보다 임대료가 저렴해 사업을 시작하기 훨씬 수월하다"며 "특색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생겨나고 홍대 대체 상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기회가 되면 건물을 매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일대 단독주택지 매매가는 작년 3.3㎡당 2000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 2000만~2500만원으로 올랐다.
이 같은 단독주택 인기는 통계에서 읽힌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3월까지 강남ㆍ서초ㆍ마포ㆍ용산구 일대 단독주택ㆍ다가구 거래는 총 3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9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경매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경매 시장에 나온 단독주택은 강남구 4건 중 3건이 주인을 찾아 낙찰률은 75%를 기록했으며, 감정가 대비 낙찰가율은 80%를 넘었다. 마포구는 작년 단독주택 경매 건수가 61건으로 2~3년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올 들어 낙찰률은 50%를 찍고 낙찰가율도 70%를 웃돌고 있다.
반면 강남 지역 오피스 시장은 울상이다.
미국계 부동산종합컨설팅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1분기 강남 오피스빌딩(연면적 3만㎡ 이상) 공실률은 8%로 작년 4분기(7.1%)보다 0.9%포인트 급등했다. 이면도로 중소형 빌딩의 공실은 더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오피스빌딩 공실률도 11.1%로 지난 4분기보다 0.4%포인트 높아지는 등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
단독주택이 각광 받는 이유는 오피스빌딩보다 임대료와 매매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비슷한 문화ㆍ서비스 업종이 몰리면서 '핫(hot) 상권'이 발달하면 향후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지가 넓어 주차장 등 조건만 맞추면 용도를 변경해 테라스나 마당 있는 건물 등 회사 입맛에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오피스빌딩 임대료로 400만~500만원을 내느니 10억~20억원 하는 단독주택을 매입해 사옥으로 쓰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임대수익을 거둘 수 있는 데다 매각차익도 가능해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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