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7월 11일(13:50)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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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케미칼이 사상 최저 수수료로 회사채 발행에 나서면서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증권사들의 '출혈 경쟁'과 롯데그룹의 '수수료 후려치기'가 맞물려 이 같은 현상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이 과도한 수수료 깎기로 인해 최근 자본시장 딜에서 '연전연패'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회사채 발행 수수료 역대 최저 '0.09%'…롯데, 2차 협상까지 해 낮춰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신용등급 AA+)은 이달 28일 올 들어 최대 규모인 65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DB대우증권을 공동대표주간사로 선임했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롯데케미칼이 이들 주간사들에게 지급하는 회사채 발행 수수료가 고작 0.09%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례없이 낮은 수수료에 시장에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들은 롯데케미칼 주간사들이 "사실상 거저 일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이달 초 주간사 선정을 위해 일부 증권사들로부터 입찰제안서를 받았다. 우리투자증권이 수수료로 0.09%를 제시했고, 한국투자증권이 0.10%를 제시했다. 나머지 증권사들은 0.15%를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무리한 제시를 한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발행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해당 딜을 따내지 못하면 리그테이블 실적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의식해 일부 증권사가 수수료를 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이런 파격 제안에 롯데케미칼 측은 한술 더 떴다.
롯데케미칼은 수수료를 낮게 제시한 우리투자증권이나 한국투자증권을 곧바로 주간사로 선정하지 않고, 기존에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던 모든 증권사들에게 2차 수수료 협상을 하겠다는 공지를 보냈다. 1차 입찰에 제시된 최저 수수료가 '0.09%'였다는 것을 알리며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사실상 롯데케미칼이 일부 증권사들의 수수료 덤핑을 이용해 다른 증권사들에게도 '후려치기'를 강요한 것이다. 결국 주간사들의 수수료는 0.09%로 맞춰졌다.
◆롯데그룹 계열사들 대부분 '최저' 수수료 지급
회사채 발행 시 주간사들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는 통상 0.20% 수준이다. 매일경제 레이더M이 최근 회사채를 발행한 20개 기업의 인수 수수료를 집계한 결과에서도 3개 기업을 제외한 17개 기업이 0.20% 이상의 인수 수수료를 지불했다. 나머지 3개 기업의 인수 수수료율은 0.14~0.15% 수준이었다.
LS, KT, GS EPS, LG유플러스 등 대기업 계열 발행사들은 대부분 0.20~0.25%의 인수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었다. 특히 SK그룹 계열사들은 모두 우량등급에 속한 발행사들임에도 주간사들에게 0.30%의 인수 수수료를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올들어 회사채를 발행한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최저 수준의 수수료를 줬다. 지난 5월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롯데푸드의 인수 수수료율은 0.10%, 이달 4000억원 어치를 발행한 롯데쇼핑은 0.15%였다. 롯데케미칼이 지난해 9월 4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당시에는 0.20%의 인수 수수료를 지급한 바 있다.
롯데그룹은 회사채 발행 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부문에서 수수료가 '짠' 것으로 악명이 높다. M&A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근 롯데그룹이 심혈을 기울였던 LIG손해보험 인수건에서도 자문사들이 기가 막힐 정도로 낮은 수수료를 받았다고 업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최근 롯데그룹이 자본시장에서 계속 실패를 거듭하는 것에도 이 같은 '수수료 후려치기' 행태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내놨다. 롯데쇼핑 점포에 대한 싱가포르 리츠 상장 무산, LIG손보 인수 고배 등 대형딜들이 일제히 무산된 것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박한 수수료에 '일 할 맛'나지 않는 주간사들이 필사적으로 매달리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롯데케미칼과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의 이 같은 행태는 수수료 정상화를 외치고 있는 당국과 시장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례"라며 "시장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런 일들은 근절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효혜 기자 /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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