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두산, 삼성화재, SK, 삼성중공업, 삼성증권, NAVER, 한화생명 등 대형주 자사주 매입이 본격화되면서 체결된 금액 기준으로 5300억원을 넘어섰다. 이달에도 지난 14일까지 65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이 체결됐다. 두 달 연속 월별 자사주 매입 규모가 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두 달을 합치면 1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내 유보금에 과세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기업들로선 어떻게든 여유 현금을 줄여야 하는 상황인 데다가 최근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주가 방어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은 배당과 함께 기업의 주주 중시 수단의 하나로 주가 안정과 인수·합병(M&A) 위협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된다. 투자자 입장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은 투자 대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는 조언이다.
장희종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2011년 이후 자사주를 매입한 종목에 투자했다면 같은 기간 횡보했던 코스피보다 40%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11일 4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현대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차가 주가 방어를 위해 자사 보통주 220만2764주(3667억6020만원)와 우선주 65만2019주(823억805만원)를 취득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하면서 현대차 주가는 이날 5% 넘게 급등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거래량 대비 자사주 매입 수량 비율이 높을수록 커진다. 지난달 이후 일평균 거래량 대비 자사주 매입 수량이 높았던 종목은 삼성중공업(44.6%) SK(31.2%) 한화생명(28.7%) NAVER(26.6%) 광전자(21.6%) 삼성증권(21.1%) 순이었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 주식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수급 측면에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 그동안 기업이익 회복이 더딘 가운데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에 의한 주식 수 감소가 증시 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자사주 매입비율 상위 100종목으로 산출한 S&P 바이백(자사주 매입) 지수는 2011년 이후 S&P 500 지수가 20%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무려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일본에서도 2011년 이후 50% 가까이 오른 토픽스 지수(도쿄증권거래소의 1부 전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보다 바이백 지수 상승률이 높았다.
임노중 아이엠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업은 주가가 저점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거나 더 이상 주가 하락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정해졌을 때 자사주를 매입한다”며 “어느 쪽이든 주가에는 긍정적인 신호를 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의 주가가 항상 오르는 것은 아니다. SK의 경우 지난 9월 11일부터 총 3760억원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
결국 자사주 매입 효과에 실적 개선까지 합쳐져야 주가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 기업 중에서 실적 전망 또한 나쁘지 않은 기업을 골라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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