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은 최근 연기금과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영구채에 투자할 때 이를 주식(지분증권) 또는 채권(채무증권) 중에 선택해 분류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금융기관과 투자기관, 회계법인 등에 통보했다. 지금까지는 기관들이 영구채에 투자하면 회계적으로 주식투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투자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회계기준원 측은 “국제회계기준(IFRS)을 적용한 국가들에서 신종자본증권이 계약에 따라 주식은 물론 채권으로도 분류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회계처리 다양성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2011년 이후부터 IFRS를 채택해 적용하고 있다. 영구채는 은행이나 기업이 자본확충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증권이다.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어 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을 띠기 때문에 영구채로 불린다. 영구채의 주식 성격을 반영해 영구채 발행사는 이를 부채(채권)가 아닌 자본(지분)으로 처리할 수 있어 각광받는 신종 상품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포스코 SK텔레콤 롯데쇼핑 등이 영구채를 발행할 당시 회계기준원은 영구채 투자자의 회계처리를 ‘주식’으로만 보겠다는 입장을 냈다. 이런 유권해석 이후 영구채 시장은 발행을 추진하는 기업만 있고, 투자자는 적은 반쪽짜리 상품이 됐다.
기관투자가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저금리 상황에서 영구채를 투자 대안 중 하나로 고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발행기업 입장에서는 신종자본증권을 통해 지분율 변화 없이 재무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만기기 길어 발행 금리는 높은 편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영구채 금리가 높아 투자처로서 고려할 만하지만 회계처리 문제가 투자 걸림돌이었다”며 “채권으로 분류가 가능해진다면 투자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들은 투자자산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해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에 반영한다. 위험성이 높은 주식이 채권으로 분류가 바뀌면 기관들의 RBC가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그만큼 기관들의 자본건전성이 강화된다.
일단 기관들은 올해 말부터 영구채를 채권으로 재분류해 RBC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들의 영구채 투자 여력이 커지면서 최근 자본확충이 시급한 일부 대기업과 금융회사 발행도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바젤Ⅲ 도입 이후 자본확충이 시급한 금융사들을 중심으로 영구채 발행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JB금융지주가 영구채를 활용한 조건부전환사채(코코본드)를 발행했고
우리은행 관계자는 “영구채 회계처리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게 돼 기관들의 투자 수요가 많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들을 중심으로 영구채를 활용한 자본확충 사례가 다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태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