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임원 직급을 주지 않는 중국계 은행 특성 때문에 40대 후반 나이임에도 ‘부장’ 타이틀을 달게 됐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A씨는 “미국·유럽계 은행 소속이라는 이름값보단 고용 안정성을 따졌다”며 “중국계 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외은 지점은 성장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불안감이 컸다”고 말했다.
A씨처럼 미국·유럽계 은행을 떠나 중국계 은행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6일 중국은행 서울지점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121명이었던 직원 수가 현재 152명으로 늘었다. 새로 온 31명 가운데 임원급(책임자)은 약 10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외국은행 인력 가운데 HSBC은행 출신들이 중국은행과 중국교통은행으로 많이 옮겨간 것으로 안다”며 “상당수가 40·50대 임원급”이라고 귀띔했다. 외국계뿐만 아니라 국내 시중은행에서도 중국계 은행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성장성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경영공시에 따르면 중국·공상·건설·교통·농업 등 한국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 총자산 규모는 지난 9월 말 기준 48조7537억원에 달한다. 1년 전보다 30조원 가까이 폭증한 수치다. 또 총여신액은 19조7779억원에 이른다. 1년 사이 7조원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중국계 은행의 이 같은 부상은 저금리 때문에 투자처를 못 찾는 시중자금이 위안화 예금에 몰리면서 생긴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위안화 예금 잔액은 11월 말 기준 198억4000만달러로 2011년(8000만달러)에 비해 200배 이상 늘었다.
중국계 은행이 국내 금융권의 새 직장으로 각광받는 데는 고용 안정성도 크게 한몫한다.
중국계 은행 관계자는 “중국계 은행은 미국·유럽계와 달리 실적을 기준으로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며 “아직까지 한국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이 직원을 해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은행의 경우 만 55세까지 사실상 정년을 보장받는다.
중국계 은행 일자리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중국건설은행은 내년 2분기 말께 현재 임차로 들어가 있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에서 새 사옥으로 옮길 예정이다. 그러면서 현재 약 50명인 직원을 70명 안팎까지 늘린다는 방침이다. 사옥으로 쓸 빌딩을 서울에서 물색 중인 중국은행과 위안화 청산결제 은행으로 지정된 교통은행 등도 경력직 채용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편 중국계 은행의 커져 가는 위상은 기업설명회(IR)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국내 대기업 최고투자책임자(CIO)가 한 중국계 은행을 찾아 직접 현재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 사정이 어렵다 보니 혹시 모를 은행권 자금 대출에 대한 도미노 회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서도 “대기업 재무 담당 책임자가 직접 중국계 은행을 찾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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