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걸린 은행···초저금리 시대 정기예금이 준다

# 최근 정기예금 3000만원의 만기가 돌아온 박수호 씨(가명·32)는 연 1%대로 떨어진 정기예금 대신 수시입출식 예금에 넣어놓기로 했다. 정기예금과 수시입출식 예금 금리 차이가 미미해진 마당에 돈을 한 곳에 묶어두기보다는 일단 수시입출식 통장에 놔두고 다른 투자 기회를 엿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예금으로 돈 모으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며 “예금 금리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이 나오면 언제든지 자금을 빼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의 여파로 대규모 정기예금이 빠져나가고 수시입출식 예금이 늘어나는 현상을 지켜보는 은행들 속내가 복잡하다. 갈수록 떨어지는 예대마진을 생각하면 정기예금보다 금리가 낮은 수시입출식 예금이 은행 입장에서 운용하기에 유리하다. 하지만 수시입출식 예금은 말그대로 입출금이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든 은행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자금이다. 주거래 고객도 쉽게 다른 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다. 특히 올 9월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수시입출식 자금이 가장 빨리 동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한국은행과 시중은행 등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분기중 은행권 수시입출식예금은 지난해말보다 14조원 가량 늘어난 434조 2000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정기예금은 지난해말 557조 3000억원에서 547조원으로 10조원 가량 감소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예수금 잔액이 166조 7000억원으로 전년도 말 대비 3조원이나 늘어났다. 5대 시중 은행 중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유치했지만 마냥 기쁘지만 않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저금리로 인해 대기자금이 늘어나는 분위기”라며 “특히 정기예금은 많이 줄어든데 비해 유동성예금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시입출식 예금은 조달비용이 낮은 반면 유동성 위험이 높고, 정기예금은 조달비용이 높은 반면 안정적”이라며 “적정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하나은행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예수금 잔액이 111조 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 2000억원이나 오히려 줄었다. 0.1%포인트가 아쉬운 기업 고객들이 다른 은행으로 이탈한 탓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개인보다는 기업 고객의 이동이 많았다”며 “전략적으로 자금이 이탈하더라도 합당한 가격(금리)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도 3월 말 예수금 잔액은 173조 2000억원으로 전년 말과 변동이 없었다.
지난해 예대율 규제가 완화된 것도 은행들이 예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예대율 규제가 완화되면서 은행들이 정기예금을 늘릴 유인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앞으로 양도하게 될 안심전환대출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예수금을 추가로 늘릴 필요가 없다”며 “ 최근 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예수금은 현 상태를 유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