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설치가 무산됐다.
금소원은 금융감독원에서 소비자보호기능을 따로 떼낸 독립적인 금융소비자 보호 기구를 말한다. 2012년 최초 정부 입법안이 나온 이래로 3년 넘게 국회를 표류한 끝에 결국 이번 정부에서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고 취임 초 수차례에 걸쳐 적극적인 의지를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여야간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사자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미온적인 태도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3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금소원 신설을 골자로 하는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논의되지 않을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6월 임시 국회에서는 금융위 설치법을 빼고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만 단독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며 “금소원 분리는 여야간 이견이 크기 때문에 금소법을 통과시키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소원이라는 별도 ‘조직’ 신설 대신에 별도 ‘법’으로 보완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2012년 정부는 저축은행 사태, 동양그룹 사태와 같은 대규모 소비자 피해를 양산한 금융사고 방지 근본 대책으로 금소법을 마련하고, 금융소비자 중심 감독 업무를 전담할 조직인 금소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혔었다.
금소원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으로 삼고 취임후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논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금융위 산하에 금감원을 분리해 금소원을 신설하자는 여당·정부안과 아예 금융위원회를 해체해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를 만들자는 야당 주장이 대립한 끝에 결국 ‘없던 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금융위를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로 분리하는 정부 조직 개편을 주장하는 야당안에 정부가 강력 반대했기 때문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취임 전 인사청문회에서 “정부 조직 개편은 ‘블랙홀’ 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금융개혁의 동력을 훼손할 것”이라며 금융위 분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서는 금소원 분리로 인한 조직 개편 후폭풍을 우려한 금융위, 금감원, 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들의 ‘이기주의’가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정책 취지를 훼손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야 대립과 상관 없이 금융위와 금감원 모두 조직을 쪼개야하는 금소원 설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며 “금융당국 스스로 법안을 폐기한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금소원 설치는 결국 금융감독기구개편이라는 큰 화두로 이어질텐데, 이런 이슈는 차기 대선공약을 통해 정권초기에나 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입장도 작용했다.
정부는 금소원 설립이 안되더라도 금소법을 통해 금융소비자보호 시스템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소원이 하드웨어라면 금소법은 소프트웨어에 해당된다”며 “기존 틀 안에서라도 금소법이 통과되면 금융소비자 보호가 획기적으로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행 금융감독체계 내에서 금감원의 소비자 보호 기능과 조직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개편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금소법은 금융상품자문업을 도입하고, 금융회사의 법적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하고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사 상품 설계부터 판매, 피해 발생시 손해발생에 이르기까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원칙을 명시해 금융소비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하는 근간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금소법이 6월 국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비롯해 5월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한 민생·경제법안을 두고 여야간 치열한 공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6월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 법안 통과가 물건너간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하반기 정기국회가 국정감사·예산의결 등으로 형식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6월이 법안을 통과시킬 마지막 기회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총선, 대선 정국에 들어서면서 사실상 이번 정부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금융위 소관 법령은 한무더기다. 지난 5월 정무위를 통과한 크라우드펀딩법, 대부업법,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법사위에 계류돼있다. 서민금융기능을 한 데 통합하는 서민금융진흥원 설립 법안도 금융위가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할 핵심 법안이다.
[배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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