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기업 연명을 위해 다른 고객들 돈을 퍼주면서 은행 손실 위험을 키워선 안 된다."
최근 '우산 뺏기 지양'과 '리스크 (건전성)관리 강화'라는 주장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선을 그었다. 진 원장은 두 주장이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진 원장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난 24일 금감원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과 옥석을 가려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면서 일각에선 (금감원)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며 "우리(금감원)는 이런 주장이 실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감독이라는 고도의 '종합예술'에 담긴 복잡성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직생활 내내 금융 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생각했지만 금감원장으로서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면 금융감독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절실히 느낀다"고 덧붙였다.
진 원장이 추석 인사를 전하면서 굳이 금융감독 방향에 대해서 언급한 것은 감독 현장에서 금감원 직원들이 느끼는 괴리감을 진 원장 역시 느끼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진 원장은 지난달 12일 기자들과 만나 "일부 금융사들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애로를 겪고 있는 정상 기업에 대해서도 경쟁적으로 여신을 회수하는 '비 올 때 우산 뺏기'식으로 영업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각 금융사가 경쟁적으로 여신을 회수하면 버텨낼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진 원장 발언 이후 금감원 감독 방향에 대한 혼선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경남기업 부당 지원 의혹이 불거진 이후 금감원이 기업에 대한 은행의 보수적 여신 관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워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 역시 진 원장 발언에 대해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모순된 감독 정책이 은행권의 보신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손실이 나면 정부 보전을 받는 국책은행은 걱정 없이 '대의'를 주장할 수 있지만 시중은행은 재무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금감원 안에서도 기업개선국은 우산을 뺏지 말라고 하고, 검사국은 부실 대출에 대해 시중은행들에 책임을 먼저 묻는 이율배반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결국 진 원장이 금융감독을 '종합예술'로 표현한 것은 금감원이 무조건적인 '우산 뺏기'가 아닌 '옥석 가리기'를 통한 선별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지휘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금감원이 금융권과 기업 양측 불만을 조율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는 발언 이후 금융권 반발로 진 원장의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권 불만을 잘 달래면서도 자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는 지원을 끊지 않도록 잘 지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정지성 기자 / 김효성 기자 / 나현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