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앞 초록띠공원. ‘세운상가 보존구역 확정’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상가 건물 뒤로 연기가 쉼없이 뿜어져 나왔다. 소방차 34대가 출동해 불길을 잡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근처 철물 작업장에서 불이 난 것. 옛 건물인데다 건물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6점포에 불길이 번져 진화작업만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인근 상인들은 “상권이 쇠락하면서 주말 낮인데도 행인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인명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며 “재개발은 요원하고 손님은 계속 줄어 장사가 안 돼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운상가 재생의 핵심으로 꼽히는 공중 보행교 설치를 위해 서울시가 내년 예산 수백억원을 편성하는 등 공사 준비에 들어가며 사업은 새 국면을 맞을 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구역을 너무 잘게 분할한데다 보존에 방점을 찍으면서 세운상가 재개발이 산으로 간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는 전면철거 방식을 백지화하고, 상가를 보존해 문화와 관광을 연계한 도심산업 거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지만 한번 쇠락한 세운지구를 되살리기엔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운상가군은 세운초록띠공원(옛 현대상가)와 세운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 8개 상가를 포함해 종로부터 퇴계로까지 남북으로 약 1㎞에 이른다. 지난 2009년 오세훈 전 시장은 세운상가군을 전면 철거해 폭 90m 길이 1㎞인 녹지축 조성 사업(재개발)을 발표했지만 뒤이어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지난 2013년 전면 수정해 보존을 내세운 도시재생을 추진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서울시는 내년 세운상가 재생 사업에 202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올해(41억원)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내년 청계천 복원 때 철거된 세운상가 가동과 청계상가를 잇는 공중보행교 1단계 사업 착공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서울시는 세운지구 전체 8개 구역 가운데 4구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소·중구역 170개로 쪼갰다. 구역이 분할되면서 건축물 높이도 소구역은 50~70m, 중구역은 70~90m로, 용적률은 소구역은 100%, 중구역은 200% 이내로 각각 적용하기로 했다. 골목길 등 옛길을 살리며 동시에 정비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업계에서는 규모가 있는 사업은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관할구청인 종로와 중구청에 따르면 세운지구 구역 중 현재 사업 절차를 밟고 있는 곳은 5%에 그치며, 특히 구역이 작게 나눠진 이후 사업이 재개된 구역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구청 관계자는 “민간이 도시재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층고 완화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그나마 기존 계획대로 구역 분할 없이 통째로 개발되는 4구역은 최근 재정비촉진계획변경안이 주민공람을 마치고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봄 고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2007년 구역 지정후 8~9년 만에 처음으로 구체적인 건축계획을 세우게 됐다. 시행자인 SH공사는 대형 오피스와 호텔, 오피스텔 등을 지을 예정이지만 종묘 경관 등을 감안해 층수가 70m로 용적률은 600% 로 대폭 수정되면서 사업성 확보가 과제다.
시가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지난 13일부터 27일까지 2주간 세운상가 5층에서 ‘다시 만나는 세운상가’라는 주제로 진행한 워크숍과 전시 등은 예상보다 적은 방문객 수로 흥행이 저조했다는 게 인근 상인들 전언이다. 세운2구역의 한 상인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 낫지만 세운이라는 거대 상권에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보완책”이라며 “뒷쪽 골목은 폐업한 가게가 늘면서 밤에 귀신이 나올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공중보행교도 전 구간이 연결되야 하지만 나머지 삼풍상가∼진양상가 구간은 보행교 설치에 부정적인 의견이 있어 주민 설득이 관건이다.
세운상가 일대는 슬럼화로 건물과 점포 매매가가 최고점 대비 20~30% 가량 떨어졌다. 대한부동산 관계자는 “이면에 있는 건물들은 2층 이상이 대부분 빈 상태라 급매물이 나와도
전문가들은 도시재생의 균형을 강조한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세운지구는 서울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곳인 만큼 재생에 성공하려면 보존과 민간의 활용한 개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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