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서울 사무실을 두고 최경수 이사장은 올 하반기 업무시간 대부분을 반대편 서쪽 여의도(국회)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래소 지주사 전환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19대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의사당을 신발이 닳도록 찾아간 것이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공전으로 무산될 처지다. 최 이사장이 이렇게 절박하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증권거래소가 이대로 가다간 아시아 변방의 구멍가게로 전락해 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최 이사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중국 상하이거래소에 업무협약을 하러 다녀왔는데 이미 런던·모스크바거래소와 오래전부터 접촉해 왔더라"며 "이런 속도를 따라가려면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스트럭처인 거래소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선진국 거래소들은 이미 다른 나라 거래소와 지분 제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자금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런던거래소와 홍콩거래소는 이미 2000년 들어 지주사 전환과 상장을 추진했고 뉴욕거래소 나스닥 일본거래소도 2006~2007년 지주사로 전환하고 상장까지 끝마쳤다. 한국거래소 지주사 전환이 미뤄지면 이들 경쟁국보다 10년 이상 뒤처지는 셈이다. 싱가포르거래소는 외국 선진지수 선물 상품을 상장해 경쟁국의 유동성을 자국으로 유치했고, 일본도 대만·싱가포르거래소와 교차 거래 등을 통해 아시아 허브 도약을 노리고 있다. 중국은 본토 주식을 선전·홍콩 증시에서도 살 수 있는 소위 선강퉁·후강퉁을 통해 글로벌 투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는 2009년 1월 공공기관으로 묶이면서 국내시장을 관리·운영하는 기능에 머물렀다. 그사이 외국인 자금이 중국 등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최근엔 국내 기관과 개인투자자들마저 우리 증시를 등지기 시작했다. 최 이사장은 "기업 자본 조달을 위해 상장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또 투자자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주기 위해 신상품 개발에도 힘썼지만 국내시장에서는 한계가 있다"며 "거래소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익원을 다양화하려면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소 사업이 국내에 국한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화돼 다시금 외국인 자금 유출이 심화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거래소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로 싱가포르SGX(35%) 대비 10분의 1, 홍콩HKEx(24%) 대비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거래소가 외국 거래소와 경쟁해 우량한 외국 기업과 다양한 상품을 국내시장에 유치하려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돼 지분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는 게 우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래소가 상장되지 않은 곳은 우리나라와 슬로바키아
지금은 거래소 간 연계·제휴가 없어 국내 투자자들이 외국 주식에 투자할 때 국내 증권사·외국 증권사를 통해 수수료를 이중으로 부담하면서 외국 시장 배만 불리고 있다. 교차거래와 연계사업이 확대되면 국내 투자자가 저비용으로 다양한 외국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한예경 기자 / 배미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