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국거래소는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잃을 위험이 있을 정도로 많은 주식을 담보로 잡혔다면 반드시 담보대출 내역을 공시하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혹시라도 최대주주가 빚을 갚는 데 실패해 은행·증권사가 담보권을 실행하면 갑자기 회사 주인이 바뀌고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9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엄격해진 요건에 맞춰 지난해 말 주주명부가 확정된 뒤 이달에만 코스닥 10개 업체가 주식담보대출 내역을 속속 공시했다. 다날 텔레칩스 SGA 하림홀딩스 가희 에이티세미콘 한글과컴퓨터 광림 한국테크놀로지 에스티큐브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주식담보대출 계약 체결 사실을 뒤늦게 공개한 면방업체 '가희'와 로봇사업을 하는 '에스티큐브'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담보 설정일에 즉시 공시하지 않고 뒤늦게 알렸다는 이유로 지난 28일과 19일 한국거래소에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가희는 지난 18일 최대주주인 JR파트너스가 보유 주식 100%를 담보로 내놨다는 내용을 공시하자마자 주가가 사흘간 20% 급락하기도 했다. 공시 당일에만 7.8% 떨어져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계 네트워크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진 펀드투자사 JR파트너스가 지난해 8월 경영권을 넘겨받은 뒤 중국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던 만큼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만으로 투자심리가 휘청인 것이다.
이처럼 담보로 잡힌 주식이 많으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투자자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높은 주식담보대출 비율 때문에 '경영위기설'이 불거지는 사례도 있다. 한국테크놀로지는 최대주주인 김용빈 대표와 특수관계인이 주식 199만주에 대한 담보계약을 설정했다고 밝히자 투자자 문의가 빗발쳤다. 재무 상황이 악화된 것 아니냐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2011~2013년 3년 연속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2015년 또다시 적자로 돌아선 점도 불안을 키웠다. 한국테크놀로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완공한 한국남동발전 석탄건조설비 1호기에 예상보다 많은 자금이 투입되면서 적자를 기록했으나 경영위기 얘기는 어불성설"이라며 "운영자금이 필요해 대출을 받았을 뿐 올해 추가로 국내 2건, 해외 1건 이상 수주를 성사시키면 이익이 개선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글과컴퓨터 최대주주 한컴시큐어는 부채를 갚기 위해 366억원 상당의 한글과컴퓨터 주식을 담보로 내놓은 상태다. 이는 지난해 3분기 기준 한컴시큐어 부채 총액인 378원과 맞먹는 액수다.
최대주주 주식담보대출 대부분은 '경영권 강화'가 목적일 때가 많다. 추가 지분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때에도 주가가 하락해 담보가치가 떨어지거나 대주주 현금이 부족해지면 오히려 취약한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 가령 다날의 최대주주인 박성찬 대표는 담보로 잡힌 주식이 소유 주식의 83%인 202억원에 달한다. 담보가 부족하면 지분율이 19.05%에서 3.2%까지 떨어져 최악에는 최대주주가 바뀔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담보설정비율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문제 있는 기업은 아니지만 자금의 정확한 용도를 파악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한다
[김윤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