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시내 최고층(69층) 주상복합 아파트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주변 전경. [매경DB] |
지은 지 오래된 데다 한 층에 두 가구만 있는 판상형 아파트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한 동에 달랑 한 대씩만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집에서 사고가 나 빨리 병원에 가야 할 때 하나뿐인 승강기가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 A씨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앞으로 서울에서 새로 생기는 고층 아파트 주민들은 A씨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시가 30층 이상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를 2대 설치하도록 사실상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는 이 같은 방침을 아파트 건축심의를 앞둔 건설사 설계팀과 설계사무소 실무자에게 전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편의를 높이고 화재 등 안전사고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건축심의 과정에서 30층 이상이면 승강기를 2대 짓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장'이지만 이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심의 통과가 힘든 만큼 사실상 '의무'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현행법에서 규정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관련 내용은 다소 느슨한 편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6층 이상인 공동주택에는 대당 6인승 이상인 승용승강기를 설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계단실형인 공동주택은 계단실마다 1대 이상을 설치' '탑승인원 수는 동일한 계단실을 사용하는 4층 이상인 층의 가구당 0.3명 비율로 산정한 인원 수 이상일 것'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계단실형 공동주택은 판상형 아파트를 말한다. 한 층에 같은 계단을 낀 가구 2곳이 있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한 동에 층별로 2가구씩 배치된 최고층 32층 아파트는 4~32층에 사는 가구 수(58가구)에 0.3을 곱한 숫자가 17.4이므로 최소 18인승 이상인 승강기 1대만 설치하면 되는 셈이다. 단 1층에 세 가구 이상이 있는 22층 이상 탑상형 아파트에는 2대를 지어야 한다.
지금까지 건설사들은 층수가 예전보다 높아진 데 맞춰 가구 수가 늘어나면 규모가 큰 엘리베이터를 짓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17인승을 지을 것을 19인승이나 21인승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어떻게든 1대만 짓는 쪽으로 맞춘 것이다.
엘리베이터 설치비용이 추가로 드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승강기를 추가로 더 지으면 그만큼 공용면적이 늘어나 분양가를 끌어올리는 역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서울에서는 이제 이런 전략이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고층 건물이 많아지는 데 맞춰 서울시가 시의적절한 대응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아파트를 포함해 31층 이상~49층 이하인 건물은 138만4000동, 50층 이상인 곳은 9만4000동으로 전년보다 각각 12.5%, 5.6% 늘었다.
곳곳에 랜드마크를 노리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안전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2013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아파트에 헬기가 충돌하고 2010년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인 우신 골드스위트에서 화재 사건이 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건설사에서도 서울시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장애인 (겸용) 엘리베이터를 공용면적에서 빼주기로 한
이용구 GS건설 건축설계팀 차장은 "요즘 짓는 아파트는 입주자 편의를 위해 일부러 더 많은 승강기를 설치하기도 한다"며 "입주자 만족도가 올라가고 승강기를 더 짓는다고 해서 공용면적이 커지는 부작용도 사라진 만큼 환영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