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거창읍 송정도시개발구역 거창푸르지오 공사 현장 전경. [사진 제공 = 내외주건] |
타오르던 부동산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청약 미달이 속출하기 시작한 지난해 12월 말, 그런 거창에서 예상 밖 분양 성적표가 나왔다. '거창푸르지오'가 거창군 내에서 처음으로 순위 내 청약을 마감한 것. 지난해 말 '청약통장 가입자 2000만명 시대'가 열려 대구에선 수백 대 1 경쟁률에 분양권 웃돈만 5000만원 이상이 붙을 정도로 투자 열기가 뜨거웠던 것에 비춰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처음 청약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성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실수요자'의 힘이라고 풀이한다. 불법 분양권 전매까지 나타났던 수도권은 지난해 말 기준 1순위 가입자 중 청약에 나선 이가 0.8%에 그쳤지만 거창에선 1순위 청약비율이 12%를 넘었다.
거창은 청약통장 가입자가 지역 인구의 1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어서 '분양 오지'로 통하는 곳이다. 서울·수도권·5대 광역시 청약통장 가입자가 지역 인구의 20~25%를 오가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30·40대 실수요자들이 나서면서 계약을 시작한 지난 1월 한 달 만에 계약률이 95%를 넘었다. 인구가 6만3000여 명으로 1000만명에 이르는 서울시 인구의 0.6% 정도인 거창군에선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청약통장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지 않고 아파트 분양이 거의 없는 상황이어서 거창은 2014년 9월에서야 청약제도를 도입했다. 청약제도가 도입된 1977년 이후 37년 만이다.
거창군 내에는 송정도시개발지구가 최대 규모의 주거지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분양한 아파트는 '거창푸르지오'밖에 없다. 수도권에선 2기 신도시가, 지방에서는 각종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이 앞다퉈 개발을 시작했지만 거창에서는 상림리 상동지구 이후 16년 만에 새 아파트가 나온 것이다.
아파트는커녕 공인중개소도 거의 없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보니 시행사와 건설사는 분양 밑작업에 공 들였다. 아파트 선전보다 주민들이 '청약통장'에 친숙해지도록 만드는 게 더 급했다. 분양업계에서는 보통 견본주택을 열기 한 달 전부터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가지만 거창푸르지오는 석 달 전인 지난해 9월부터 청약통장을 취급하는 은행과 거창군청 협조를 받아 주민들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청약제도를 안내했다. 인터넷 카페도 구축해 컴퓨터를 들여 놓고 모의청약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까지 꾸몄다.
분양을 맡았던 김세원 내외주건 이사는 "거창군이 청약제도 적용 지역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다"며 "작은 마을인 만큼 공동체 개념이 중요해 카페를 사랑방처럼 운영했다"고 전했다.
거창 푸르지오는 동네 주민들과 시행·건설사가 어떤 시설을 넣을지 등을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며 만든 게 독특하다. 김신조 내외주건 대표는 "동네 주민들과 아파트를 어떻게 만들지를 같이 고민했다"며 "교육도시 특성을 살려 독서실을 들이고 동네 주민들이 함께하는 찜질방 개념의 '건식 사우나'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분양업체는 발코니 확장 등에 익숙하지 않은 수요자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거창푸르지오는 교통·상업 지구 개발 호재에 따른 시세 차익을 겨냥한 투자 관점을 넘어 청약제도 도입과 운영 과정, 실수요자 위주의 주거 공간 구성 등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인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