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사 중 누가 더 많이 팔았는지, 수수료가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당국은 ISA에 대해 불완전판매 근절을 외치고 있지만 현재 상황은 오히려 불완전판매를 부추기는 모습입니다"
한 증권사 지점장은 최근 판매를 시작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ISA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홍보와 마케팅으로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원활한 업무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ISA가 지난 14일부터 은행, 증권사, 보험회사 등 33개 금융기관에서 일제히 판매를 시작했다. 첫날 집계된 가입자는 약 32만명으로 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유입돼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ISA 출시 사흘 만에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시중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작년이 아닌 2014년도 소득 증빙 서류를 지참하고 오는 투자자들이 간혹 있어 상담에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게다가 자필로 서명 받을 서류가 워낙 많아 가입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ISA 가입을 위해서는 2015년도 기준 소득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세청 홈텍스 사이트에서는 오는 5월까지 2014년도 기준 원천징수영수증만 조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안내가 선행되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소득 증빙 서류 발급에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또 ISA는 예·적금, 주가연계증권(ELS), 파생결합증권(DLS), RP,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을 수 있는 특성 상 관련 징구서류가 많다.
예컨대 신탁형 상품의 경우 가입을 위해서는 종합자산관리계좌 약관, 상품설명서, 투자확인서, 특정금전신탁 계약서 등 10개 이상의 서류에 자필로 서명해야 한다. 일임형의 경우도 계좌개설신청서를 포함해 일임계약서, 모델포트폴리오 설명확인서, RP(환매조건부채권)거래 동의서, ETN(상장지수증권)·ETF(상장지수펀드) 등 파생상품 투자거래 동의서에 자필 서명이 필요하다. 서명과 함께 각 서류에 고지된 내용을 투자자에게 상세히 설명해야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상담부터 가입까지 인당 최소 1시간부터 많게는 2~3시간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당국은 ISA 불완전판매 근절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당국을 바라보는 일선 현장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관계자들 역시 징구서류가 지나치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 상품의 핵심을 짚어주는 것은 고사하고 혹시나 미비된 서류가 있을지 재차 확인하는 데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
주요 증권사 관계자는 "ISA가 워낙 급하게 도입돼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관간 점유율 확보 경쟁이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외부 환경이 불완전판매를 하게끔 종용하고 있는데 당국은 어떠한 대책마련도 없이 불완전판매 근절만을 외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판매 첫날 가입자가 하루만에 32만명을 넘어선 데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비정상적인 영업형태 등 우려했던 불완전판매가 버젓이 이뤄졌고 당국이 이를 묵인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입자를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은행권은 거래처를 통해 판매 개시일 전부터 가입계약서를 미리 배포해 상품설명 없이 서류를 작성해오게끔 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ISA 준비 기간이 짧아 현재 상품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원금 손실 가능성 등 해당 상품에 대한 설명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계좌가 개설된 것이다. 하지만 해당 상품에 대해 투자손실이 발생하면 그 몫은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ISA를 무리하게 추진한 부분에 대한 배경에도 의구심이 쏠린다. 현재 업계에서는 지난해 근로소득세가 전년 대비 1조7000억원 가량 더 걷혔는데 금융당국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세제혜택 등을 담은 ISA 출시를 앞당겼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이 바둑을 두는 최첨단 시대가 도래 했는데 계좌 하나 개설하는 데 수십 장의 서류를 받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며 "마치 1970년대 나온 상품을 팔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ISA는 복합 상품이다 보니 기존 상품보다 징구서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현재 당국에서도 해당 부분에 대한 문제를 파악하고 있고, 앞으로 불필요한 서류 제외 등 추가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김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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