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ISA를 도입하면서 벤치마킹한 일본과 영국은 각각 주니어 ISA와 연금형 ISA를 도입하면서 만능통장 제도에 살을 붙이는 모양새다. 반면 한국형 ISA는 금융상품 종합절세계좌라는 뼈대만 남았을 뿐 비과세 한도나 중도인출 제한 등 투자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매력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ISA를 통한 국민재산 증식이란 당초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2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ISA 출시 일주일 동안 투자금액은 3204억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추세가 연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가정해도 총 투자액은 13조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당초 업계에서 올해 적게는 10조원, 많게는 20조원의 자금이 ISA로 몰릴 것이라고 예상한 데 비하면 많지 않은 금액이다.
특히 1인당 평균 투자액은 49만원으로 기대 이하란 지적이다. 업권별로는 증권사가 300만원, 은행은 32만원이다. 은행 ISA의 경우 상당수 계좌가 최저 가입액 1만원만 넣고 실제 투자는 없는 이른바 ‘깡통 계좌’로 파악된다. 증권사도 고객유치를 위해 미끼용으로 내건 3개월 짜리 연환산 5% 특판금리를 제공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 투자가 대부분이다. 한국보다 2년 앞서 ISA를 도입한 일본은 첫해 1인당 평균 375만원, 2년 동안 평균 710만원을 투자했다.
한국형 ISA가 금융당국과 업계의 기대와 달리 투자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형 ISA는 근로·사업소득자(농어민 포함)만 가입할 수 있다. 가계 재테크의 열쇠를 쥔 주부들이 배제된 것이다. 소득이 있어도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가입할 수 없다. 의무가입 5년 동안 중도인출을 제한해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대다수 직장인들은 돈이 묶일까봐 섣불리 투자를 못하고 있다는 게 영업점 직원들의 설명이다.
비과세 한도도 5년간 고작 200만~250만원에 불과해 투자자 입장에선 예금 등 원금보장상품 이외 자산에 투자할 유인이 없다는 지적이다. 연간 1000만원씩 5년간 연 1.5% 짜리 예금에만 투자해도 총수익 225만원으로 비과세 한도가 차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17일 금융위원회 간부회의에서 임종룡 위원장이 설명한 “포괄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해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자의 자금운용 수익성을 제고하고 금융시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던 ISA 도입 취지는 온데간데없다.
반면 영국과 일본의 ISA는 비과세 한도와 의무가입 기간 제한이 없고 중도인출도 가능하다. 가입자격도 각각 만 16세 이상과 만 20세 이상으로 연령 기준만 있을 뿐 소득 제한은 없다.
일본은 내달 1일부터 만 20세 미만도 연간 80만엔(83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는 ‘주니어 NISA’를 추가로 도입할 예정이다. 학자금 등 자녀양육 자금 마련에 비과세 혜택을 줘서 가계의 양육 부담을 줄이고 출산 기피현상도 타개하려는 취지다.
앞서 2011년 주니어 ISA를 도입한 영국은 내년 4월에는 ‘연금형 ISA’까지 도입키로 했다. 만기 60세까지 중도인출을 못하게 하는 대신 정부가 연 25%의 이자를 얹어줘 노후연금으로 쓰도록 만드려는 목적이다. 연간 가입 한도 4000파운드(670만원)를 투자할 경우 1000파운드(170만원)을 이자로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ISA 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가입자격, 의무가입기간, 세제혜택 규모 등을 선진국 수준으로 보완해나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ISA 가입금액과 대상자 확대, 인출제한 완화 등 제도 개선을 통해 ISA 수요가 더욱 증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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