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기사 박종원(53·가명) 씨는 작년말 접촉 사고를 내 곤욕을 치렀다. 사고처리를 보험으로 하려했는데, 무보험이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매월 소속 대리운전업체에 보험료를 꼬박 내왔던 터라 어리둥절했다.
#5년째 대리운전을 하는 김수영(50·가명) 씨. 대리운전보험료를 내면서도 그동안 한번도 주요 담보가 무엇인지, 보험료는 왜 올렸는지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 실제 보험사에서 보험료를 올린 것인지, 대리운전업체에서 임의로 보험료를 올려 받는건 아닌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해당 보험사에 자초지종을 물어봐도 구체적인 설명은 기대하기 힘들다.
대리운전보험 시장이 혼탁하다. 보험료를 내는 대리기사들은 매월 내는 보험료가 보험 가입에 사용되는지, 보험료가 올랐다면 왜 그런지, 또 보험료가 실제 오른 것인지, 가입한 보험의 주요 담보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것조차 확인이 어려울뿐더러 심지어 부당한 해고까지 당하고 있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연간 보험료만 500~600억원(2014년 기준, 현재 기준 1300억원 추정) 이상 오가는 대리운전보험 시장을 놓고 ‘갑’인 대리운전업체와 보험사, 보험대리점 간의 잇속 챙기기에 ‘을’인 대리기사들만 울화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자가용자동차 대리운전 실태조사’를 보면 2014년 기준 전국적으로 3851개 대리운전업체에서 8만7000명의 대리기사가 일하고 있다.
현행 대리운전보험은 표면적으로 대리기사가 속한 대리운전업체가 보험사와 계약을 하고 대리기사는 소속 대리운전업체에 매달 보험료를 내는 형태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보험사 대신 보험대리점이 보험료 수납부터 일련의 대리운전보험 계약 과정에 모두 관여한다. 때문에 대기기사가 속한 대리운전업체나 계약에 직접 관여하는 보험대리점이 부당행위를 할 경우 대리기사는 손놓고 당할 수밖에 없다. 만약 보험대리점이 대리기사들의 보험료를 소속 대리운전업체로부터 받아 실제 보험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보험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보험가입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시간이 곧 돈’인 대리기사들이 매달 보험가입 여부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고 실제 확인하려해도 잘 알려주지 않아서다. 문제를 제기하면 보험 가입을 받아주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기 일쑤다.
전주에서 대리운전을 하는 정씨의 경우가 그렇다. 정씨는 “전주에서 대리운전업체와 보험대리점이 보험료를 부풀려 대리기사들에게 받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단 전주뿐만 아니다”라며 “보험료 문제를 따지고 싶어도 소속 업체에서 대리운전 콜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영업을 못하게 하거나, 보험대리점 관계자가 대리운전보험 인수를 거절하는 등 횡포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정씨는 고민끝에 고질적인 대리기사 보험료 문제를 개선해 보려고 이달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었다. 그러나 정작 민원을 넣은 정씨는 금감원 민원 접수를 이유로 소속 대리운전업체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정씨는 “보험대리점이 금감원 민원을 취하하지 않으면 대리운전보험을 받아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며 “계속 버티자 동료 대리기사들의 보험까지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해 결국 소속 대리운전업체의 해고 처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보험대리점이 대리운전업체에도 해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전주에 있는 대리기사들은 보험료 이중 납부 등을 이유로 11~12일 1577콜, 둘둘콜 등 대리운전업체에서 항의 시위를 할 예정이다.
현재 대리운전보험 시장은 10여개 보험대리점이 과점하고 있는 구조다. 이렇다보니 대리기사들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대리점이나 소속 대리운전업체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대리기사가 대리운전업체를 거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대리운전보험 가입하면 대리운전 콜이 제한돼 사실상 영업이 불가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보험료를 내는 주인은 대리기사인데 대리운전업체와 보험대리점의 횡포로 생계를 위협받아야는 현행 제도는 감독당국이 나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영문도 모른채 보험료를 과납한 것에 대해서도 감독당국이 나서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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