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동 산유국 정부가 발주한 발전소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했던 국내 건설사 A는 결국 고민 끝에 입찰을 포기했다. 최근 무분별한 저가 공세로 중동 일대 공사를 휩쓸던 유럽 업체가 눈독들였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맞붙으면 수주 가능성도 있었지만 제대로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에 과감히 접었고, 이후 이 유럽업체가 예상보다 훨씬 더 싸게 수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건설시장에서 ‘저가수주’전에 혈안이던 국내 건설사들이 달라졌다. 고유가 시절 화수분처럼 쏟아지던 중동 공사를 따려고 국내사끼리 출혈경쟁도 불사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이제 수익성이 떨어진다 싶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해외 발주처의 ‘갑질’도 참지 않는다. 독자생존만 고집하지 않고 국내 건설사는 물론 해외 기업과 뭉치는 연합전선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물산이 발주처인 카타르 철도공사(QRC)로부터 카타르 도하 메트로(지하철) 공사 계약해지를 당한 것은 하도급업체 선정 과정에서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를 삼성물산이 거부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삼성물산은 발주처의 ‘공사지연 보상금’요구에 국제상업회의소(ICC) 등을 통한 중재신청에 나설 것도 검토 중이다.
삼성물산은 지난 2013년 당시 스페인 건설사인 오브라스콘 후아레테 라인(OHL)·카타르 빌딩컴퍼니(QBC)와 컨소시엄을 꾸려 이 사업을 수주했다. 총 공사비만 7934억원에 달하는 거대 사업으로 현재 공정률은 30%에 달한다.
문제는 진행과정에서 철도공사측 ‘갑질’이 도를 넘은 것. 발주처는 삼성물산에게 품질 면에서 떨어지는 특정 하도급 업체와 도급계약을 강요했고, 삼성물산은 ‘책임시공’ 을 위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말 잘듣는 시공사를 원했던 발주처는 이같은 갈등을 계기로 삼성물산과 대립각을 키워오다 급기야 지난달 초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공사지연에 따른 배상금 270억원도 요구했다.
계약을 무산시키는 단계까지 간 것은 이례적이나, 이처럼 산유국의 ‘공사 갑질’은 흔하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한 건설사 해외사업 담당자는 “카타르 같은 산유국은 최근 저유가 기조를 극복하느라 공사비를 후려치는 등 더 무리한 요구도 서슴치 않는다”며 “예전과 달리 이제 한국 건설사들은 아닌건 아니라고 과감히 거부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삼성엔지니어링이 사우디아라비아 마덴 롤링밀 알루미늄 플랜트 공사를 발주한 미국 알코아에 2억200만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발주처가 공사 감리를 소홀히 하고 부당한 보수 공사 요구로 공기가 1년 이상 늦춰진데 따른 책임을 물은 것이다.
연합전략도 활발하다. 총 계약금액 45억4000만 달러로 지난해 국내 건설사가 따낸 해외 프로젝트 중 가장 규모가 큰 ‘알주르 정유공장(AZRP)’이 대표적이다. 쿠웨이트 남부 알주르에 하루 61만5000배럴 규모 저유황 연료유를 생산하는 플랜트 건설사업으로 총 5개 패키지 중 4개를 국내 건설사 5곳이 꾸린 컨소시엄이 땄다. 2번 패키지는 대우건설과 현대중공업, 미국 플루어 컨소시엄이 따냈고 5번 패키지는 현대건설과 SK건설, 이탈리아 사이펨 컨소시엄이 본계약을 맺었다. 한화건설은 스페인 테크니카스와 중국 시노펙 컨소시엄으로 1번 패키지를 수주했다.
유일하게 못 딴 4번 패키지는 유럽 업체들 저가공세에 국내사들이 사실상 포기했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중동담당 실장은 “과거 국내 건설사끼리 해외에서 맞붙어 입찰가격만 올려놓고 결국에는 발주처 지갑만 채워졌던 사례가 많았다”며 “컨소시엄을 활용하면 과도한 저가수주를 피할 수 있고 공사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도 분산되는 만큼 최근 활용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최근 수주 ‘파란불’이 켜진 100억 달러 규모 이란 바흐만 제노 정유시설 프로젝트도 대우건설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현지 국영정유회사와 업무협약(MOU) 을 맺은 것이다.
지난 4월 GS건설·대림산업 등 대형 건설사 13곳과 수출입은행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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