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주채권은행이 나 홀로 담보 챙기기에 나선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KDB산업은행은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 전에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핵심 부동산에 대규모 근저당을 설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의 주채권은행이지만 채권단에서 삼성중공업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가 6위에 불과해 자신들보다 익스포저가 큰 5개 은행에는 알리지 않고 알짜 담보물을 차지한 셈이다. 매일경제신문이 10일 삼성거제호텔 등기부 등본을 확인한 결과, 산업은행은 지난 4월 15일 삼성거제호텔 건물과 토지에 채권최고액을 9000억원 한도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이 호텔 감정가는 15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대출 시 담보가치는 일반적으로 감정가의 75% 선이다. 이를 고려하면 산업은행은 이례적으로 담보가치의 8배 정도의 근저당권을 설정한 셈이다.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에 대한 익스포저가 6조1400억원으로 은행권에서 가장 큰 수출입은행에도 근저당권 설정에 대해 협의나 통보를 하지 않았다. 삼성거제호텔은 삼성중공업이 마련한 1조5000억원 자구안 중에 핵심 내용으로 알려진 삼성중공업 부동산 자산이다.
일반적으로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은 대출을 실행할 때 담보물의 가치 내에서 대출액의 110~120% 수준에서 설정된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삼성거제호텔에 담보물 가치의 8배나 되는 폭탄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산업은행은 근저당권 설정 전후로 삼성중공업에 대한 신규 대출이 없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삼성중공업에 신용대출을 갖고 있었으나 이를 만기 연장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이다.
이런 근저당 설정은 삼성중공업이 이 호텔을 매각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고 이 호텔을 담보 삼아 유동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주채권은행으로 삼성중공업에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해왔던 산업은행이 뒤에서는 구조조정에 방해되는 일을 한 셈이다. 특히 공정성이 생명인 주채권은행이 다른 은행과 협의도 없이 자신들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신용등급 하락 때문에 무담보 신용대출을 담보대출로 바꾸게 됐다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지만 근저당권 설정일(4월 15일) 직전에 삼성중공업 신용등급이 하락한 적도 없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당시 담보 설정 없이는 대출 만기 연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담보를 잡았다"며 "삼성중공업의 자구계획을 징구하기 전이어서 임시적으로 연장하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삼성중공업의 또 다른 채권은행들은 산업은행의 '나홀로 건전성 관리'에 대해 실망감이 역력하다. 산은은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적 근거도 없으며 주채권은행의 도리를 저버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 만기를 연장하면서 거액의 담보를 잡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며 "주채권은행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라고 전했다.
[박용범 기자 / 정석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