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도입 후 많은 채무자들이 대부업자의 추심 공포로부터 벗어나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등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으나, 제도 확대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금융권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는 표면적으로 제도 확대시 ‘빚을 안 갚아도 그만’이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 신용거래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라 우려한다.
하지만 업계의 속내는 수익성 악화 우려에 있어, 제도 확대 반대를 위한 명분 쌓기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권 ‘채무자 보호 강화’ 법안 잇따라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지난 4일 채권추심업자로부터 채무자 보호를 위해 채무자가 선임할 수 있는 대리인의 범위를 채권추심 관련 업무를 하는 비영리법인, 사회적 기업 등으로 확대, 채무자의 방어권을 강화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채권공정추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률 2조에 따르면 채권추심자는 금융기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개정안 국회 통과시 그동안 대부업자에 한해 적용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모든 금융권으로 확대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도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현재 대부업자에서 모든 금융업권에 확대 도입하는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률안 준비에 있다”며 “연내 국회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 대체 뭐길래
대부업자의 빚 독촉에 따른 채무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2014년 7월 15일부터 시행된 채무자 대리인 제도는 채권공정추심법 개정을 통해 그 근거가 마련됐다.
이 제도는 채무자 보호가 골자로, 빚 독촉에 시달리는 채무자가 대리인(변호사 등)을 선임, 이 사실을 채권자에게 서면 통지하면 채권자는 대리인에게만 연락할 수 있다. 채권자가 직접적 이해 당사자인 채무자와 직접 연락할 수 없게 한 것이다.
당초 해당 제도는 대부업자의 과도한 빚 독촉으로부터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부업자에 한정해 시행한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정치권 주도로 전 금융권에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금융권에서는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다. ‘설마 했는데’ 제도 확대가 초읽기에 들어가서다.
특히 채권자의 재산권 보다는 통상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채무자에 대한 보호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무르익으면서 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은 높은 상황이다.
◆“도덕적 해이 확산, 신용거래 근간 ‘흔들’”
금융권이 이 제도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채무자가 고의로 빚을 갚지 않을 목적으로 제도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미 채무 탕감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이라며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전 금융업계로 확대 적용하면 빚을 안 갚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다른 관계자는 “대리인의 경우 채무 이행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만큼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채무면탈을 합법적으로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권에서는 해당 제도 확대에 따라 파생되는 부작용으로 ▲수익성 악화(연체율 상승)에 따른 리스크 분산의 일환으로 대출 이자율 상승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 심화 ▲서민금융 위축 ▲신용사회 기반 붕괴 ▲불법 사채업자에 의한 추심 증가 등을 꼽고 있다.
신용정보협회에 따르면 현재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돼 상환의지가 없거나 상환능력이 취약한 약 100만명 및 매년 신규 등록
특히 금융회사 가운데 신용정보회사는 채무자 대리인 제도 확대시 주요 업무인 채권추심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관련 종사자 1만5000명이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며 강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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