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최근 분위기는 하락이 아니라 추락입니다. 실수요자가 있어 가격 변동성이 크지 않은 단지인데 1주일 새 호가가 6000만원까지 낮아졌어요.”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이 같이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계절적으로 11월은 부동산 비수기에 접어드는 시점이지만 학군이 좋은 대치동 일대는 수능시험을 전후해 반짝 특수가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에 11·3 대책까지 더해지면서 특수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분위기다. 재건축 기대감이 더해지며 1년 사이 1억2000만원 이상 시세가 뛰었던 한보미도맨션 전용면적 128㎡형은 일주일 사이에 호가가 6000만원 떨어졌다. 인근 은마아파트 역시 전용 76㎡형의 호가가 11·3 대책 발표전 12억2000만원에서 지금은 11억9000만원으로 주저앉았다.
투자수요가 많이 몰려있는 강남구 개포동, 송파구 잠실 일대 역시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개포주공 일대 B공인 관계자는 “10월 정부 구두개입 전까지만 해도 한 주에 200만~1000만원씩 슬금 슬금 오르던 재건축 매물들이 11월이후에는 일주일에 1500만~2000만원씩 가파르게 내리고 있다”며 “매수 문의가 없어진데다 시장 안팎으로 불안감이 커져 투자자들이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개포주공4단지의 경우 9억3000만원에 나왔던 전용 42㎡형의 호가가 9억1000만원으로 떨어졌다.
인근 분양권 매매시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3월 분양한 ‘래미안블레스티지’(개포주공 2단지 재건축)는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매도자가 내는 양도세를 매수자가 대신 내주는 ‘양도세 전가’가 전매의 기본처럼 통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C공인 관계자는 “오를 거라던 분양권 웃돈이 최근 1000만원 가량 떨어졌는데도 사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송파구 장지동 D공인 관계자는 “분양권 호가가 한 주 사이 1000만~5000만원씩 빠졌는데 매수 문의는 하루 1~2건 정도 밖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례중앙푸르지오는 지난주 8억1000만원이던 전용 85㎡형 분양권 매도호가가 7억9000만원으로 내렸다.
재건축 투자자들의 매수 문의가 빗발치던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가락시영 재건축)에서도 최근 매수는 실종되고 매도 문의만 이어지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9억5000만원이던 전용 84㎡형 분양권의 호가가 1500만원 가량 내렸다. D공인 관계자는 “아파트 소유자들이 ‘이제 집을 팔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물어오는데 앞으로 시세가 오를 것이라고 대답을 못하겠다”며 “불안해진 매도자들이 전화 한 번 할 때마다 100만원씩 호가를 낮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동 둔촌주공 1단지 전용 58㎡형은 8억2000만원에서 7억8000만원으로, 과천주공1단지 전용 52㎡형의 경우 9억원에서 8억6000만원으로 호가가 떨어졌다.
강남4구와 과천을 제외한 지역에서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꺾이고 있다.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서울 노원구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2%로 전주 대비 0.03%포인트 축소됐다. 노원구, 강서구, 동작구, 마포구, 서대문구, 영등포구, 은평구 등 다른 구도 대부분 상승폭이 축소됐으며 용인시 수지구는 지난주 0.01% 상승에서 이번주 보합으로 바뀌었다. 정부 규제의 영향을 덜 받거나 안받는 지역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청약시장도 지방을 중심으로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16일 실시된 ‘양산 서희스타힐스’ 청약은 1순위 경쟁률 7.71대 1을 기록했다. 주말 견본주택에 1만5000여명이 몰렸던 점을 감안할 때 높은 경쟁률이라 평가하긴 힘들다. 풍선효과 수혜 지역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반응은 뜨겁지 않았던 것이다. 경기 시흥 목감지구의 ‘시흥 목감 호반베르디움5차’(평균 경쟁률 5.17 대1)도 당초 예측만큼 많은 사람이 몰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경북 김천 센트럴자이 또한 김천 최초 대형 건설사 브랜드라는 프리미엄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부분 면적에서 1순위 지원자가 미달됐다.
전문가들은 계절적으로 비수기인데다 각종 대내외 악재에 정부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강남 아파트 가격은 강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부동산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라며 “기존주택 매매, 청약시장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상황이 더 안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 인상도 부동산 급랭을 우려하게
최근 일부 시중은행은 주담대 자금조달용으로 발행한 금융채의 금리가 올랐다는 명분으로 대출 금리를 5% 수준까지 올리고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의 아파트가격 하락은 11·3 대책에 따른 심리적 위축도 있지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은행 금리 영향이 크다”며 “불확실성을 낮추려면 금리부터 안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 김인오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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