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FTA로 국내 부동산 중개 시장이 처음 개방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우리 공인중개사법은 1998년 9월부터 외국인 및 외국법인도 국내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무소를 개설할 경우 관련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미 FTA에서 합의된 내용도 기존에 개방된 것과 동일한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당시 최소한의 국내 생태계 보호를 위해 한국 공인자격을 취득하고 국내에 사무실을 보유하는 것을 의무조항으로 넣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1990년대 후반 처음 시장이 열리던 당시 센츄리21, ERA, 리맥스 등 미국을 대표하는 부동산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했지만 큰 성과는 못 거뒀다. 중개업소 일부는 후광 효과를 기대하고 이들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었지만 별 재미를 못 봤다. 당시 한국은 부동산 거래의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본 후 중개업소를 방문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외국계 프랜차이즈라는 간판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가맹 중개업소들은 부동산114 등 인터넷 마케팅에 강점을 가진 토종 부동산체인으로 이동했고 자연스레 외국 기업들은 업종을 전환하거나 철수했다.
미국 부동산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은 중개와 건물 관리, 금융, 세무, 법무 등을 연계하는 통합 서비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적다. 게다가 시장에서는 8만명 이상의 공인중개사가 경쟁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미국의 부동산 거래는 전속 거래인 반면 한국은 한 물건을 두고 수십 명의 중개업자가 경쟁하는 구조"라며 "한국 특유의 부동산 거래 풍습이 있기 때문에 외국 기업이 당장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앞으로 외국 기업들이 참여할 기회는 넓어질 전망이다. 임대주택 보급 확대로 주택을 '소유'가 아닌 '주거'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그만큼 건물 관리의 중요성도 높아진다. 과거 관리사무소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일을 이젠 전문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 특히 상업용 대형 부동산은 매매와 유지보수·관리를 아우르는 전문기업들이 독식해가는 추세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1000억원이 넘는 초대형 오피스의 경우 워낙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매각 실사나 관리에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CBRE 같은 외국계 기업들이 이런 시장은 이미 잠식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국 대통령이나 FTA와 관계없이 우리 부동산 중개업의 경쟁력
[정순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