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CEO 연임시대 下
1일 금융권에 따르면 2008년 지주 출범 후 처음으로 연임 회장을 탄생시킨 KB금융지주와 2010년 신한사태를 겪은 지 7년 만인 지난 8월 국내 코스피 상장사 733곳 중 유일하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 평가에서 지배구조 부문 최상위 등급인 'S등급'을 받은 신한금융지주의 공통점은 차기 CEO 양성 프로그램 등 차별화된 경영승계 규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승계 규정은 경영 성과와 연동하는 책임경제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낙하산 인사나 금융그룹 내 잠재 후보 간 권력 다툼에 따른 'CEO 리스크'를 예방해 경영 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
KB금융은 2014년 주전산기 교체를 놓고 내부 싸움이 벌어진 KB사태 이후 2016년 경영승계규정을 제정했다. 주주와 외부 헤드헌팅 기관의 엄정한 심사 후 선정한 사외이사 7명을 통해 관치금융 굴레를 벗어던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KB금융 이사회는 이번 회장 후보군에 친정부 성향의 외부 출신 인사는 배제하고 윤 회장을 포함한 내부 출신 인사에 초점을 맞췄다. 명확한 경영승계규정에 따라 내부적으로 후보군을 관리한 덕에 외풍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신한금융은 이보다 앞서 2010년 신한사태 내홍을 겪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그룹경영회의와 CEO 승계 제도 등을 마련해 CEO 선임을 둘러싼 마찰의 소지를 줄였다. 신한의 그룹경영회의는 그룹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회장과 계열사 CEO와 지주회사 전략 담당 임원 등이 함께 모여 논의하는 협의체다. 이전까지 회장 단독으로 이뤄졌던 독선적 의사 결정 구조를 개선한 것이다.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이사회 내 위원회로 설치해 지주 회장과 각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군을 육성하고 수시로 평가하도록 했다. 국내 금융사 중 최초로 회장 자격 요건에 임기 중이라도 만 70세가 되면 퇴임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 같은 신한의 시도는 2014년 금융위원회가 만든 지배구조 모범규준의 참고 사례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제대로 된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이사회가 전제돼야 한다. 송민경 한국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미국, 독일 등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CEO 추천과 선임은 주주총회가 아니라 이사회 권한이자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외의 내로라하는 글로벌 금융사들은 이사회 내 소위원회를 통해 CEO 승계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이사회 의장과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평가·보상 위원회가 CEO 승계 프로그램과 주요 경영진 업무평가를 담당한다. 유럽 대표 금융사 BNP파리바도 지배구조·임명위원회가 그룹 지배구조와 차기 CEO 선임을 관리한다. 국내 금융사들도 이사회 권한을 강화하고 독립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KB금융은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학계, 심지어 경쟁사 CEO 추천을 받은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KB금융의 최영휘 이사회 의장(확대위원장)은 신한금융 사장을 역임했고, 박재하 사외이사는 신한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바 있다. 박 이사는 신상훈 전 신한금융 사장의 추천을 받았고, 이병남 이사는 네덜란드연기금자산운용(APG)의 위임을 받은 김상조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현 공정거래위원장), 김유니스경희 이사는 장하성 당시 고려대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의 주주 추천을 통해 이사로 낙점됐다. KB금융이 외압이나 정치적 고려 없이 현직 CEO의 연임을 결정한 것은 이처럼 독립적인 이사회 존재 덕분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KB금융 등 대형 금융회사 CEO 연임에 대해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CEO 연임은 국내 금융기관의 경쟁력과 가치 제고에 매우 긍정적 신호"라고 환영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과거 CEO가 단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CEO 능력과 성과 대신 정권 등 특정 세력의 이해에 따라 CEO 자리를 나눠 갖는 후진적 관행 때문이었다"며 "낙하산 외부 인사 CEO는 조직에 자기 사람을 심고 전임자 경영전략을 뒤집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장수 CEO가 제왕적 CEO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장수 CEO가 더 능력 있는 차기 회장이 오지 못하게끔 하는 '참호 구축'에 나서는지 이사회가 견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태성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