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상장 바이오 독식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05년 기술성장기업 상장제도가 도입된 이래 상장업체 44곳 중 39곳이 제약·바이오 업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오업종이 아닌 기업은 5개에 불과하며 정보기술(IT) 기업이 2곳, 항공기 부품사가 3곳이었다.
기술성장기업 상장제도는 성장성을 가진 기업을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전문평가기관(기술보증기금·나이스평가정보·한국기업데이터)의 기술력 검증을 거쳐 코스닥시장에 상장시키는 제도다. 2005년 도입돼 그해 바이로메드, 바이오니아 등 2곳이 상장했다. 2006년부터 상장 기근에 시달리면서 유명무실 논란이 일었지만 2015년부터 그 수가 획기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 12개사로 상장사가 대폭 늘어난 뒤 지난해 10개사가 상장했고, 올해도 7개 회사가 적자 속에서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양적인 성장을 이뤄냈지만 문제는 이들 상장사의 성장성이다. 수년간 적자를 거듭하면서 기대했던 획기적인 전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9개 기업 가운데 올해 흑자가 예상되는 기업은 10곳에도 못 미칠 정도다.
기술성장 공동 1호 기업인 바이로메드와 바이오니아는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수년째 지지부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로메드는 시가총액이 2조5000억원에 달하지만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에도 못 미친다. 2015년 매출 77억원, 영업이익 11억원을 기록한 뒤 지난해에는 매출 68억원에 영업이익 3억원, 올해는 매출 61억원에 영업이익 2억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바이오니아는 최근 5년간 2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매년 영업손실이 발생하며 5년간 누적 영업손실만 300억원이 넘었다.
연초부터 코스닥 바이오 종목의 열풍을 몰고 온 신라젠은 지난해 12월 상장한 뒤 1년 만에 주가가 9배가량 수직 상승했다. 연초 주당 1만2000원 안팎에서 최근에는 11만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신라젠은 암 치료 신약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최근 3년 누적 영업손실만 1000억원에 달한다. 지속되는 적자난에도 이들 바이오기업은 기술성장기업 특례에 따라 거래소 제재에서는 예외를 적용받고 있다. 예컨대 장기 영업손실(4년 관리종목 지정·5년 퇴출), 매출 30억원 미만 기업 제재(1년 관리종목 지정·2년 연속 시 퇴출) 등에서 기술성장기업 미적용 특례를 받고 있다. 한국거래소 입장에서는 매출 저하나 이상 과열 현상이 벌어지더라도 특별히 제재할 수단이 없는 셈이다.
바이오 종목이 영업손실에도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 반면, 같은 기술성장 상장 기업인 항공주는 흑자전환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답보 상태에 있다. 대표적으로 항공기 부품업체인 아스트는 2014년 기술상장으로 주목받으며 주가가 7000원에서 3만7500원까지 치솟았지만 최근 1만8000원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매출은 600억원대에서 올해 1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며 흑자전환에 성공한 뒤 올해는 영업이익만 100억원에 달하고 있다. 항공기 도어 부품 전문인 샘코도 꾸준한 흑자 기조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9월 15일 상장 첫날 대비 저조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샘코는 상장 첫날 1만250원을 기록했지만 최근 9700원 선을 맴돌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기술상장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장기간의 실적 저하나 쏠림은 관리 대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 보호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바이오기업은 너무 신약이나 기술 하나에 매달려 있어 기업분석 자체가 힘든 게 많다"며 "게다가 장기간 매출 저하와 영업손실이 나고 있는 경우에는 투자자들에게 매도나 매수의 투자 권유조차 할 수 없는 만큼 기술상장이라 하더라도 거래소에서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 고평가 넘어 버블 우려
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MSCI지수 기준 한국 헬스케어 섹터의 주가는 올해 들어 80% 넘게 상승했다. 한국 헬스케어 섹터의 주가 상승률은 연초 대비 지난 1일 기준 82.2%를 기록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 올해 IT섹터 주가 상승률이 각각 36.1%, 56.5%로 가장 높았던 반면 한국만 헬스케어 섹터가 IT섹터를 뛰어넘은 것이다. 한국 IT섹터의 주가 수익률은 43.4%로 2위에 그쳤다.
한국은 '바이오 독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최근 바이오 대형주에 대한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바이오·헬스케어 일부 대형주 위주로 주가가 급등하면서 버블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유화증권 분석에 따르면 한국 헬스케어 섹터의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57배로 다른 분야보다 높았다. PER가 높으면 주당 순이익에 비해 주식 가격이 높다는 뜻이다.
한국 헬스케어 섹터는 실적 전망치 개선 폭보다 주가 상승 속도가 더 빨라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급등한 일부 바이오 종목은 PER가 수백, 수천 배에 달하기도 했다.
반면 선진국 헬스케어 섹터의 12개월 예상 PER는 17배, 신흥국은 24배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전문가들은 최근 바이오·헬스케어 업종 주가가 크게 오른 이유를 임상시험, 신약개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용준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일부 바이오 관련 종목은 도저히 밸류에이션으로 해석이 안 되는 수준"이라며 "그동안 주식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다양한 외부 변수가 조정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헬스케어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경우 12개월 예상 PER가 선진국과 신흥국보다 낮은 편에 속했다. IT섹터의 경우 선진국의 12개월 예상 PER가 19.5배, 신흥국이 15.1배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8.1배로 약 절반에 그쳤다.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김승한 유화증권 연구원은 "선진국·신흥국과 한국 주식시장을 비교해보면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 흐름이 우상향이고, 12개월 예상 PER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데다 시장 대비 영업이익 비중도 늘어나는 것은 IT섹터"라며 "2018년 상반기까지 IT섹터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한국 IT섹터의 경우 최근 반도체 경기 고점 논란으로 조정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 IT주인 삼성전자는 지난달 26일 모건스탠리가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내린 이후 약 일주일 만에 8% 떨어졌다. 이를 계기로 IT섹터에 대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최근 하락세에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IT섹터의 연말 주가 조정은 진입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며 "IT섹터의 경우 내년에는 중소형 IT주로의 낙수 효과도 나타날 수 있어 투자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트렌드를 봐도 올해는 IT주가 독보적인 성과를 보였다. 선진국은 미국 IT 4인방인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를 중심으로 IT섹터가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신흥국 시장은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3대 IT 기업이 높은 성장성으로 주목받았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도 "대형 바이오주가 랠리를 이끌고 있지만 이는 글로벌 트렌드와 크게 다르다"며 "한국도 바이오에 집중된 투자자의 시야를 밖으로 넓힐
IT 수요는 글로벌 경기 상승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글로벌 패러다임에 힘입어 내년에도 견고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은 IT 고점 논란에 대한 경계가 완화되면 연말까지 코스피 2600선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진영태 기자 / 정슬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