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헤지펀드의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연구해왔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정치적으로 변질이 심각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스튜어드(steward)'는 본래 재산이나 조직, 시설 등을 관리하는 집사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기관투자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다한다는 것은 통상 재산을 맡긴 고객들을 위해 집사의 역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국내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에 간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돈관리 집사를 기업관리 집사로 변질시켰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에 관한 논의를 왜 기관투자가가 해야 하느냐"며 "미국에서는 이미 기관투자가 주주행동주의 때문에 시장의 실패를 경험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데 우리는 뒤늦게 기관투자가의 행동주의를 정부가 나서서 부추기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상위를 차지하던 GE나 듀폰 등 대기업에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오면서 자사주 매입 소각,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그동안 인내했던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이들 행동주의 펀드의 논리다. 이 과정에서 회사를 잘라서 파는 분할매각을 요구하고 당장 돈이 안 되는 연구개발(R&D)센터 등은 폐쇄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 비중은 60%를 넘어섰고 최근에는 지수를 추종하면서 수익을 내는 패시브 펀드가 급증하다 보니 스튜어드십코드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신 교수는 지적했다. 패시브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한 사람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1만개 이상 기업에 기계적으로 투자하는 상황에서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하려다 보니 ISS 등 의결권 자문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기관투자가들보다는 이들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만 더 커지는 기형적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를 두고 "미국에서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이 약탈적으로 기업가치를 착출해 가면서 월가에는 재벌 펀드들이 생겨나게 됐고 이게 지금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이끌어낸 주역인데 우리가 이런 걸 놓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관투자가들에게 스튜어드십코드를 요구하면 할수록 국내 기관투자가들도 기업가치는 차치하고 일단 주주가치 극대화에 몰입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도 대형 펀드 자체나 혹은 펀드에 돈을 넣을 정도로 여유 있는 주주들의 배만 불리고 기업은 어려워지는 양극화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게 신 교수의 우려다. 실제로 학계에서조차 기관투자가의 행동주의가 성공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관투자가의 행동주의 덕분에 기업의 주주 환원이 늘어나 단기 주가 상승은 될지언정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상승했다는 실증 분석이 없다는 얘기다. 신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진 등과 공동연구 결과를 연내 발표할 예정인데 여기에도 기관투자가 행동주의 실패에 관한 실증 분석이 담겨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이미 스튜어드십코드가 대통령 공약, 경제정책 방향 등에 포함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변질돼 있
[한예경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