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데…깊어지는 재건축단지 `내홍`

↑ 최근 조합장 해임안이 통과돼 재건축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전경.

서울 핵심지 재건축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지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업비가 7000억~8000억원대인 대형 단지들이 절차를 어느 정도 밟아 온 상태에서 내홍으로 발목이 잡혀 기본 몇 년간은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의 재건축부담금 부과 영향에 따라 수익은 예전보다 내기 어려워진 반면 재건축 단지 집값 하락세까지 번지자 조합 내 이견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사업비만 7000억원이 넘는 용산구 이촌동 소재 '한강맨션 아파트'가 소송전에 돌입할 전망이다. 지난 20일 비상대책위원회는 덮개공원 사업 추진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와 조합 운영비 미공개 등을 이유로 송업용 조합장에 대한 해임 안건을 상정했고, 참석 조합장 374명 중 359명 찬성으로 해임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송 조합장은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진행된 총회라 무효"라고 주장하며 "법적소송과 효력 정지 가처분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건축심의까지 통과해 사업시행인가를 앞둔 한강맨션 조합이 표류하며 재건축이 최소 몇 년간 미뤄질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한강맨션은 1971년 입주를 시작해 올해로 47년 차를 맞은 낡은 아파트로 총 660가구 규모인 중형급 단지다. 그러나 서울 내 얼마 남지 않은 저층(5층) 아파트인 데다 한강이 남향으로 조망되고 '강북 부촌'으로 꼽히는 이촌동 내에서도 손꼽히는 입지를 갖고 있어 재건축 시장 최대어 중 하나로 꼽혔다. 재건축을 통해 35층, 1450가구 규모 대단지로 변신할 예정이었으나 내부 갈등으로 일단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리게 됐다.
1490가구 규모로 사업비만 역시 8000억원 넘는 서초구 반포동 소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조합은 사업시행인가를 마치고 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해 놓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현재 조합장을 맡고 있는 최홍기 씨는 최근 현대산업개발에 시공사 선정 협상이 결렬됐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이에 따라 조합은 내년 1월 중 시공사 선정 무효 및 재선정 총회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반대 측도 만만치 않다. 현대산업개발과 협상을 맡은 '협상단'은 전 조합원을 상대로 한 7월 시공사 선정 총회 결과를 조합장이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며 "내년 1월 총회는 시공사 재선정 총회가 아닌 조합장 해임 총회가 될 것이다. 이미 500장 가까이 해임 발의서가 걷혔다"고 설명했다. 관리처분인가만 받으면 철거와 이주를 해 재건축이 마무리되는 막바지 단계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3주구의 갈등은 900억원대 특화설계 공사비를 둘러싼 논란에서 시작됐다. 재건축 부담금 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특화설계로 소요되는 비용마저 증가하자 조합 측이 '협상 결렬'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일단 추진된 사안을 뒤엎었을 때 이로 인한 매몰비가 더 많이 드는 데다 시간 소요에 따른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떻게든 협상을 통해 현 시공사와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소재 '대치쌍용2차' 역시 현대건설로 시공사를 선정했지만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안형태 조합장은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내년 1월에는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쉽지 않다"며 "일단 현대건설과 공사비와 공공기여를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타 단지 상황도 지켜보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구당 수억 원대가 될 수 있는 재건축부담금에 대한 우려에 더 이상 비용을 지출하고 싶지 않은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재건축 절차 진행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과 송파 재건축 최대어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도 사업 진행 속도가 나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잠실주공5단지는 박원순 시장 재임 시절 유일하게 최고 50층 높이 재건축을 승인받은 곳이지만 이에 대해서도 조합원 내부 의견이 갈려 '최고 50층 재건축을 포기하자'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최근 총회에서 일단 기존 안대로 추진하기로 했지만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작지 않게 작용하면서 향후 사분오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가 불거진 5개 단지의 현재 계획상 재건축 후 늘어나는 가구 수만 해도 5000가구가 훌쩍 넘는다. 이들 조합이 각종 규제와 이로 인한 내부 갈등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는 서울의 주택 공급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재건축·재개발 특성상 이러한 내부 갈등은 언제든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무한대로 절차가 늘어질 수 있다"며 "그런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규제보다는 해결책 마련에 중점을 둬야 하고 재건축 장려를 위한 당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인혜 기자 / 추동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