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방위 공시지가 급등 ◆
27일 북촌 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에 소재한 경로당 분위기는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만큼 스산했다. 30~40년씩 이 지역에서만 살아온 노인들은 지난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대화 주제로 등장한 적이 없던 '급등한 공시가격' 이야기를 꺼내놓고 연신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곳 한옥마을의 주택 소유자들 상당수는 마땅한 소득 없이 집 한 채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하루아침에 세금이 급등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에 따르면 가회동 소재의 연면적 41㎡ 한옥주택은 2018년 3억4600만원 공시가격에서 2019년 3억3200만원으로 10.4%, 계동 소재 298㎡ 연면적 주택은 13억5000만원에서 18억9000만원으로 40% 수준 급등한다.
A씨는 100㎡ 남짓 대지에 49㎡ 면적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갖고 있다. 한 층은 A씨가, 다른 한 층은 A씨의 아들 부부가 살고 있다. A씨는 "공시가격이 최근 오르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이 오르는 건 평생 처음 본다"면서 "소득도 없는데 재산세와 건강보험료만 더 내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그는 "집이 재산이니 기초노령연금도 받을 수 없는데 아들네와 한층으로 모여 살면서 다른 층은 월세라도 놓아서 돈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국감정원이 세금 계산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을 대폭 올릴 것을 예고하면서 단독주택의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같은 보유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매일경제가 표준지 공시예정가격 정보를 공개한 부동산알리미 사이트에서 주요 지역의 공시예정가격을 조회한 결과, 대략적으로 공시가격이 5억원 미만인 단독주택은 올해 대비 내년에 약 10% 수준 오르고, 5억~10억원 미만인 단독주택은 약 10~20% 수준, 10억원 이상은 약 20~50% 수준까지 오르는 경향을 나타냈다.
정부는 이번 공시가격 조정이 '고가 단독주택'을 겨냥한 것임을 시사했지만, 오랜 기간 한곳에서 살아온 1주택자들이 느끼는 체감은 그야말로 '한파'에 가깝다. 특히 북촌 한옥마을은 청담동이나 한남동과 같은 대규모 저택이 아닌 중소형 단독주택과 한옥이 많은 곳이라 수십 년간 살아온 소위 '원주민' 비중이 높다.
연령대도 대부분 70대 이상으로 특별한 소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년에 몇백만 원만 올라도 당장 이사를 나가야 할 판이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이곳의 경우 한옥 보존이라는 명분에 '건폐율 60%, 용적률 150%' 등 엄격한 건축 규제를 적용받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대신 소소하게 수선을 해온 수준에서 살아온 소박한 사람들이 많다.
이미 지난 몇 년간 공시가격이 올라 최근 들어서는 팔고 나가려는 시도도 몇 번 있었지만 거래가 잘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단층 한옥에 거주하는 B씨(85)는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집이 각종 규제에 묶여 있으니 팔리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오히려 여기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져 집값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말했다.
북촌 한옥마을의 '핫플레이스'인 돈미약국 인근 3층짜리 단독주택에서 거주하는 조병선 씨(74)는 "서울시가 우리 동네를 한옥 보존지구라고 하며 집을 건들지도 못하게끔 규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객이 몰려 살기만 나빠졌다"고 설명하면서 "공시가격이 실거래가 대비 낮았던 것이 사실이라 쳐도 이걸 차근차근 올려 현실화해야지 이렇게 한꺼번에 올려버리면 소득이 없는 노인들은 어떻게 세금을 내느냐"고 반문했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에 이어 토지에 매겨지는 표준지 공시지가도 덩달아 뛴다. 매일경제가 서울과 수도권의 주요 지역 토지의 표준지 공시지가를 조회한 결과, 농지로 사용되는 전답과 임야 등의 올해 대비 공시지가 변동률은 2~5% 수준으로 크지 않았다.
공시지가가 20~30% 이상 대폭 뛰어오른 곳은 대부분 상업용 부동산 건물에 속한 토지들이었다.
상업용 부동산 건물의 토지공시가격이 크게 뛰면서 기업을 비롯한 빌딩 소유주들도 보유세 부담이 커지게 됐다. 명동 네이처리퍼블릭의 경우 보유세(재산세+종부세) 부담이 올해 약 6620만원에서 약 9929만원으로 50% 급등한다.
공시지가가 올해보다 24%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영선빌딩(300㎡)도 세 부담이 약 4619만원에서 6364만원으로 37.8% 뛴다.
정부가 보유세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표준 단독주택에 표준지공시지가도 큰 폭으로 오르면서 부동산 전반에 걸친 '보유세 폭탄' 가능성이 현실화된 셈이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세무사)은 "표준지 개별공시지가가 오른다면 땅값에 이어 주택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공정시장가액도 오르는 등 연쇄 인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막연히 오른다는 이야기보다 실제 통지서를 받아보면 세금 상승 체감 효과가 훨씬 큰 만큼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윤예 기자]
※ 이 기사와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결과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내 공시가격 3억 원대 표준주택은 총 21가구가 있으며, 이 중에서 공시가격이 5억 원 수
본지는 보도 전날인 27일 북촌한옥마을 일대 경로당 등을 현지 취재해 현장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해당 보도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국토부와 감정원의 공식적인 데이터 확인 결과, 3억원에서 5억원으로 공시가격이 오른 한옥주택이 없음을 확인하였고 사실과 다르기에 해당 보도 부분을 삭제하고 바로 잡았습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