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發 주총 대란 / 달라진 주총 풍경 ◆
코스닥 상장사 아이쓰리시스템은 지난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 안건 중 제29조(이사의 선임) 수정건이 반대표로 부결됐다. 이사회에서 사내이사와 기타 비상무이사를 구분해 선출하는 주석을 넣으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한 대표이사 지분율이 36.91%밖에 되지 않아 주총 참석 주식 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가결 요건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이 상장사 소액주주 비율은 63.1%에 달한다. 작년 소액주주의 주총 평균 참석률이 7.3%인 점을 감안하면 상장사의 주주 모으기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27일 대한항공 역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이사 연임 안건 통과에 실패했다. 사측이 찬성표를 충분히 얻지 못해 발생한 주총 대란이다. 이들처럼 찬반투표에서 안건이 부결된 건을 제외하고도 정족수 부족으로 사측 안건이 부결된 사례는 올해 100건이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날 매일경제신문이 올해 들어 상장사 주총 관련 공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주총을 하기로 한 상장사 1997곳 중 1160곳(58.1%)이 주총을 마쳤다.
올해 주총 결과를 공시한 1160곳 중 100곳(8.6%)에서 부결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는 작년 전체 부결 건수(76개사·전체의 3.9%)를 넘어선 수치다.
상장사 주총이 대거 몰리는 29일 '슈퍼 주총데이'에는 상장사 부결 비율이 10%까지 치솟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올해 상장사 10곳 중 한 곳이 부결 사태를 겪는 셈이다.
올해 주총 부결 중 87건(87%)은 감사(위원) 선임에서 나왔다.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며 감사 선임 때 오너 등 지분 규모에 상관없이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이 이 같은 주총 대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올해는 작년 매출 8조원이 넘는 GS리테일과 같은 대기업도 주총 혼란을 겪고 있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65.8%에 달하지만 이른바 '3%룰'에 따라 최대주주 의결권이 제한되면서 의결정족수를 못 채워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한 것이다.
증권업계에선 섀도보팅 폐지로 인해 '3%룰'의 무게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찬반 비율대로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인 섀도보팅이 2017년 말에 폐지되면서 부족한 찬성표를 소액주주들에게 개별적으로 부탁해야 하는 몫은 오롯이 상장사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장사들은 직원을 동원하거나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등 주총 통과를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우리는 소액주주가 많아 주주총회를 개최할 때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며 "주총에 감사 선임 안건이 있으면 주주들 집을 방문해 가며 의결권 위임을 요청해야 하지만 인력이 많지 않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번 주총에서 감사 선임 안건이 부결된 한국화장품은 "감사 선임 안건 통과를 위해 주총 분산 프로그램 참여, 전자투표 및 의결권 대리 권유 공시 등 의결권 확보를 위해 노력했지만 부결됐다"고 토로했다.
YG엔터테인먼트도
작년 감사 선임 불발 경험이 있는 영진약품은 올해 직원 80명이 주주들 집까지 찾아가 의결권 대리 행사를 요청했다. 발행 주식 찬성 27%를 얻어 가까스로 감사위원 3명을 선임했다.
[문일호 기자 / 박의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