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대란 이제 시작이다 上 ◆
올해 나타난 감사대란은 대부분 기업과 회계법인 간 구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회계법인 간 전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회계부정을 눈감아주는 회계법인은 당장 이듬해 다른 경쟁 회계법인이 감사를 맡아 부정한 사실을 적발한 경우 법인 자체의 존속이 달린 징계와 손해배상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표준감사시간 제정에 따라 감사시간이 향후 더욱 확대되면서 감사가 강화되는 것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내년부터 시행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에 따라 220개 기업의 감사인이 강제로 바뀐다. 기업은 지정된 감사인과 계약해야 하고 2019년도 회계감사는 해당 회계법인이 맡게 된다. 그간 특정 감사인을 써왔던 기업은 갑자기 감사인이 교체되면서 보다 강도 높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할 처지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계감사의 부담이 생기지만 해당 회사를 그동안 감사했던 회계법인도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매년 최선의 감사를 했더라도 새로운 시각에서 칼날을 들이대는 경쟁 회계법인의 회계사 눈에는 안이한 회계처리가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할 경우 위 사례처럼 수년이 지난 회계처리를 놓고도 회계사가 징계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간의 징계는 고의성이 없다면 대부분 경징계로 처리됐지만 개정 외부감사법 시행에 따라 앞으로는 상한이 없는 손해배상에 형사처벌까지 회계법인의 책임이 더욱 막중해진 상태다. 개정 외감법에 따르면 고의·중과실 위반 회사에 위반 금액 20% 한도의 과징금이 부과되고, 대표이사를 포함한 회사 임원에게 6개월 이내의 직무정지, 공인회계사에게 1년 이내의 직무 일부 정지 등 조치가 신설됐다. 회계 위반 과징금은 회사의 경우 위반 금액의 20%, 감사인에게는 감사보수의 5배가 부과되며 절대 금액 한도가 없다. 예컨대 상장사가 1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자행해 이해관계자에게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 200억원 수준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다. 형사처벌 징역도 현행 5~7년에서 10년 이하로 수위가 높아졌다. 과징금 부과와 손해배상 시효도 현행 각각 5년과 3년에서 최대 8년으로 연장됐다.
한 회계법인 파트너는 "일부 기업에서는 회계사에게 감사를 주는 입장인데도 갑을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감사 담당 회계사도 외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며 "기업 의견을 다 들어주다보면 막대한 손해배상과 함께 형사처벌로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깐깐한 감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회계업계에서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함께 표준감사시간제가 확대 적용될 경우 회계법인 간 경쟁 속에 장기적으로 감사의 질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공표한 표준감사시간제는 당초 산업별로 기존 대비 2배 이상의 감사시간 확대를 추진했지만 중소기업계의 부담과 상장사들의 연착륙 요구에 따라 평균 1.2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아직도 절반 이하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매출액 1000억~5000억원 기업은 미국에서는 연평균 5301시간의 감사에 보수 9억3690만원을 지불했다. 반면 국내는 1053시간에 7992만원에 불과하다. 감사시간은 미국의 19.86%, 보수는 8.53%에 그친다. 매출 1조원 이상 5조원 미만 기업도 미국은 9059시간에 20억원을 부담했지만, 한국은 3490시간에 2억7583만원에 그쳤다. 시간은 미국의 38%, 보수는 13.8%에 불과했다. 표준감사시간제는 2022년 시간을 재조정할 예정
■ <용어설명>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 상장사 등 외부감사법 대상 기업이 6개 사업연도에 걸쳐 감사인을 자유 선임한 뒤 이어지는 3개 사업연도는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
표준감사시간제 : 회계사가 감사 대상 회사의 재무와 사업내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보장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진영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