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금감원은 치매보험금 지급 조건을 합리적으로 변경하기 위한 치매보험 약관 개선안을 발표했다. 강한구 금감원 보험감리국장은 "현행 약관상 보험금 지급 조건이 소비자 인식이나 의학적 기준과 차이가 있어 향후 보험금 분쟁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 같은 분쟁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1분기 기준 치매보험 계약 건수는 377만건으로, 가입자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신계약 건수가 87만7000건으로 이미 지난해 한 해(60만1000건) 동안의 가입 건수를 추월했다.
고령화에 따른 치매 대비에 대한 관심 증가와 보험사들의 경증치매 보장 확대 등으로 시장이 급격히 팽창했다. 손해보험사들은 보상금액이 최대 3000만원인 상품까지 내놓으면서 공격적으로 영업하다가 최근에는 보상액을 낮춰 1000만원 수준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감원은 이 같은 추세를 고려해 더 늦기 전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논란의 근원을 제거하기로 했다. 소비자는 전문의가 실시하는 인지·사회기능 검사인 'CDR 척도(Clinical Dementia Rating Scale)'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일부 보험사는 MRI 등 뇌 영상 검사상 이상 소견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한다. 약관상 치매 진단 시 뇌 영상 검사(MRI·CT) 등에서 이상 소견이 반드시 확인돼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문제의 원인이 약관에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는 정신과나 신경과 전문의에 의해 병력, 신경학적 검진과 함께 CT, MRI, 뇌파검사, 뇌척수액 검사 등을 기초로 치매를 진단하도록 규정돼 있다. 강 국장은 "일부 보험사가 'CT·MRI를 기초로 해야 한다'는 현 기준을 'CT나 MRI에서 치매 소견이 나와야 지급 가능하다'는 필수 요건으로 해석해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금감원은 약관에 '뇌 영상 검사 등 일부 검사에서 치매의 소견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다른 검사에 의한 종합적인 평가를 기초로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뇌 영상 검사 결과를 필수가 아닌 선택적 판단 근거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새 약관이 시행되면 치매 진단은 신경과 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의해 병력 청취, 인지 기능, 정신 상태 평가, 일상생활 능력 평가, 뇌 영상 검사 등 종합적 평가를 기초로 결정한다. 금감원은 대한치매학회 등의 의료 자문을 거쳐 약관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당초 금감원은 보험금 지급 시 CT나 MRI 결과를 보험사들이 아예 요청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금감원은 보험사들과 협의를 거쳐 치매 상태의 조사나 확인을 위해 필요한 경우 치매의 진단을 위해 실시한 뇌 영상 검사 등 결과를 요청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보험사들도 이 같은 사전 조율을 통해 보험사들의 입장을 일정 부분 반영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 업계 일각에서는 "민원과 분쟁을 예방하려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당한 보험 청구가 발생할 여지가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과거에는 CT나 MRI 같은 과학적인 판단을 치매 진단의 핵심 근거로 활용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전문의의 의견이 사실상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다. 인위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만큼 도덕적 해이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보험사는 전문의가 실시한 검사 결과 내용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조치로 '특정 치매 질병코드(F·G코드)'에 해당하거나 치매약제를 일정 기간 처방받는 등 추가 조건을 걸고 보험금을 지급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치매는 질병코드로 분류하기 어렵고, 치매약제 투약은 진단의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의료 자문에 따른 조치다.
새 약관은 오는 10월 이후 출시되는 상품에 적용된다. 과거에 치매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도 혜택을 볼 수 있다. 금감원은 감독행정을 통해 MRI 등 뇌 영상 검사상 이상 소견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치매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지 않도록 각 보험사에 지도할 예정이다. 사실상의 소급 적용이다. 강
금감원과 보험 업계는 치매보험금 지급 조건을 '보험계약안내장'을 통해 기존 계약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보험협회 '상품공시 시행세칙'을 올해 3분기 개정할 예정이다.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