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매일경제신문이 수출기업 중 시총 상위 10곳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해보니 이들의 올 상반기 매출은 287조7391억원이다. 작년 상반기(297조4088억원)보다 3.3% 감소한 수치다.
문제는 같은 기간 이들 10곳의 재고자산이 69조7933억원에서 81조4386억원으로 16.7% 늘어났다는 것이다. 반도체 '투톱'을 제외한 8곳의 올 상반기 매출은 1년 새 4.2% 증가했지만 재고는 14.2%나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재고와 매출은 함께 늘어나지만 재고자산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보다 지나치게 높으면 이들 기업 창고에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빠르게 쌓인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무역전쟁 직격탄을 맞은 반도체의 부진으로 수익성은 물론 매출도 후진했다"며 "반도체를 제외하면 매출은 늘었지만 재고가 그 이상으로 쌓이면서 재고 처리 부담으로 주요 제품에 대해 제값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분석 대상 10곳 중 매출이 가장 많이 감소한 곳은 SK하이닉스다. 올 상반기 매출이 13조2249억원에 그쳐 작년 동기 대비 30.7% 급감했다.
같은 기간 재고는 65.9% 늘어난 5조5887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역시 매출은 줄고 재고는 늘어났다. 재고자산은 1년 새 14.2% 늘어난 31조2470억원을 기록했다. D램 반도체의 주요 고객사였던 글로벌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글로벌 무역전쟁의 우려로 투자를 줄이면서 이들 반도체 기업의 재고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서는 반도체 가격의 추가 하락을 기다리며 투자를 미루는 현상까지 겹치면서 반도체 '투톱'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공급 제한 등의 악재까지 겹치며 올 하반기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6일까지 반도체 '투톱'을 9394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일각에선 공급과잉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량 감소 정책과 IT 기업들의 보유 재고 소진으로 올 하반기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매출과 수익성이 살아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삼성물산은 밖으로는 무역전쟁으로 인한 국외 수주 감소와 안으로는 부동산 규제 등 건설경기 침체 여파로 매출이 후퇴했다. 올 상반기 매출은 작년보다 0.5% 감소한 15조3290억원이다. 반면 재고는 16.4% 늘어난 1조8571억원이다.
삼성물산은 연초에 올해 수주 목표로 11조7000억원을 제시했지만 올 상반기까지 2조5000억원을 올리는 데 그쳤다. 목표 대비 수주 달성률이 21%에 그쳐 올 하반기 부담이 커졌다.
10곳 중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SDI(13.3%)로 나타났다. 외국인이 이달 국내 주식 중 삼성SDI(1104억원)를 가장 많이 산 이유다.
이 업체 사업 구조는 소형 배터리 등 IT 부품과 전기차 배터리 등 중대형 배터리로 다각화돼 있다. 매출 기준 1년 새 두 자릿수 성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재고는 같은 기간 32.4%나 급증했다.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인한 IT 수요 부진 여파를 겪어 관련 부품 재고가 쌓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현대차·현대모비스·LG화학·포스코·기아차 등 5곳도 모두 같은 기간 매출 증가율보다 재고자산 증가율이 높아 올 하반기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는 올해 새 차 출시 효과로 1년 새 매출이 8.1% 늘어났지만 재고는 14.8% 늘어났다. 글로벌 화학제품 수요 감소로 LG화학은 1년 새 재고가 20%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매출과 재고를 따졌을 때 LG생활건강만 유일하게 올해도 성장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회사는 1년 새 매출이 11.9%
외국인은 이달 LG생활건강과 기아차만 순매수를 기록하고 나머지 8곳은 모두 내다 팔았다. 10곳의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이달 1조861억원에 이른다.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