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책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프로젝트 대부분이 테러나 내전 등을 비교적 자주 겪는 중동·아프리카 국가 내 사업이다.
수출입은행이 '채무 불이행 상태'로 분류한 국가도 포함돼 있다. 의도치 않게 국제적 논쟁에 휘말리거나 자금 회수를 못하는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0일 기획재정부와 수출입은행이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수출입은행은 올해 말까지 나이지리아와 이라크에서 5891억원 규모 건설·수출 사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승인할 예정이다.
2020년에는 총 2조5062억원 규모의 이라크·미얀마·투르크메니스탄·앙골라 소재 발전소 개발, 차량 수출 사업 등이 지원 대상이다.
다음해인 2021년 이라크와 탄자니아 교통 인프라 사업까지 합치면 향후 3년 동안 수은 특별계정 지원 대상 규모는 총 3조7498억원에 달한다. 수출입은행은 이 중 1조원 수준의 금융 지원을 우선 승인할 계획이다. 향후 지원 규모는 확대 가능하다. 수출입은행 특별계정은 올해 5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신설됐다.
기재부는 추 의원실에 제출한 서면 자료에서 "초고위험국은 전쟁 이후 복구와 경제 성장에 따른 인프라스트럭처 건설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 수요가 높다"며 "대규모 인프라 사업 수주는 경쟁력 있는 금융 조달방안 제시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수출입은행법 시행령 16조 2항을 보면 특별계정은 정부 출자금, 수출입은행 이익금 중 기재부 장관이 승인한 자금 등으로 운용된다. 최근 기재부는 자금 약 2000억원을 수출입은행 특별계정에 수혈했다. 하지만 사업 대상들이 대내외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국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추후 정부와 수출입은행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체 지원 후보 사업 금액(3조7000억원) 중 2조8000억원은 이라크 소재 사업들이다. 하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국가위험도나 신용도가 불안정하다.
수출입은행의 자체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도 이라크는 총 9단계인 국가신용도 분류 중 최하위인 E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채무불이행 상태라는 뜻이다.
수출입은행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개도국 채무불이행 사례가 국제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상대국의 채무 상환 능력을 판단하기 위해 1977년부터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이를 여신한도 관리, 여신지원 적격 대상국 심사 등에 사용하고 있다.
외교부도 추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이슬람국가(ISIS) 잔존 세력에 의한 테러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로 인해 치안 상황 급변이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이라크 같은 국가 소재 사업에 자금을 투입했다가 전쟁이나 테러, 쿠데타 등으로 손발이 묶이면 수출입은행은 막대한 수준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기재부도 "초고위험국가 특성상 기존 지원 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리스크가 수반된다"고 밝혔다. 수출입은행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여파로 2016년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추 의원은 "사업별로 국가 재정 수천억 원이 투입되는 만큼 사업 검토와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며 "특히 특별계정 후보 사업들은 채무 상환 능력이 없거나 아주 취약한 국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둘러 자금을 집행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정부나 수출입은행이 뜻하지 않은 자금세탁 등 국제적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과거 사례도 적지 않다. IBK기업은행은 2012년 기업은행 뉴욕 지점에서 개설한 이란중앙은행(CBI)
이에 대해 기재부는 "적정 수준으로 충당금을 적립하고 지속적인 사업 모니터링과 사후 관리를 하도록 관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계정과 분리된 특별계정을 설치한 것도 이 같은 리스크를 통제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