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멘트 】
예술작품의 영원한 소재일 수 있는 것이 자연일 텐데요.
오늘 이 시간은 흙을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 세계로 국제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화가 한 분을 모셨습니다.
채성필 작가 스튜디오에 나와계십니다.
【 앵커 】
안녕하세요?
【 기자 】
안녕하세요. 채성필입니다.
【 질문 1 】
2003년부터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계신 재불화가로 알려졌는데요,
국내가 아닌 프랑스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답변 】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저는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는데요.
더 폭넓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체험을 위해 유학을 결정했었고요.
쉽지는 않았지만, 유학 도중 프랑스라는 나라가 지닌 문화적 저변을 통해 폭넓은 창작활동의 기회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활동하느냐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로서 환경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 질문 2 】
프랑스에서 개인전을 8번 가지셨고, 최근 작품이 파리 시청에 소장되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프랑스인들에게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답변 】
저도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아마도 저의 정체성처럼,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독창성과 공감대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질문 3 】
미술계에서는 '흙의 화가'로 잘 알려져 계신데요.
수많은 자연 소재 중에서 흙을 작업 소재로 삼은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답변 】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작업에서 '흙'은 소재일 뿐만이 아니라, '주제'이고, 화면에 보이는 이미지기도 한데요.
개인적으로 '흙'은 유소년 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향수이고, 현재 외국생활에서 느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객관적으로 '흙'은 동서를 막론하고 종교와 역사, 철학과 문화 전반에서 떠날 수 없는 근원적 원소이고 공간이며, 인간과 더불어 생명의 순환을 이루는 회귀적 공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흙'을 통해 제게 주어진 회화적 공간 안에 흙이라는 '본질', 혹은 '근원'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콘크리트 문화라 할 수 있는 현대문명에 대한 메시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질문 4 】
흙을 수집하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신다고 들었어요.
여행 중에 주로 흙을 수집하신다고요?
여행 목적 자체가 작품에 쓸 흙을 수집하기 위한 여행인가요?
【 답변 】
현대미술에서 창작은 결과적 산물이 아니고, 진행 중인 과정이라고 합니다.
여행은 여행지의 삶과 문화와 더불어 자연을 체험할 좋은 기회이고, 이 기회에서 만나는 흙들은 그 지역의 삶과 문화를 가장 잘 간직한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행을 통해 흙을 수집하지만, 이 흙은 단순히 물질이 아니라, 여행에서 바라보고 느낀 여행지의 역사를 담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제 작업의 시작은 여행이고, 저 또한 창작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질문 5 】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시면서 흙으로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지역마다 흙의 특징이 차이가 있나요? 한국 흙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점들인가요?
【 답변 】
흔히 개울만 건너도 흙은 달라진다고 하죠?
빛깔과 점성, 입자의 굵기, 냄새와 촉감까지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나라마다 전반적인 특징은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프랑스 흙은 전반적으로 석회질이 많아서 마른 후에 뿌옇게 변하는 특성이 있지만, 남불의 후씨옹이라는 곳에는 아주 붉고 선명한 흙이 있고, 제가 즐겨 사용하는 녹색기운의 흙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흙만큼은 특별하지요?
한국으로부터 흙이 도착하는 날은 마치 어머니가 오시는 것처럼 기다리고 기다리게 됩니다.
그것은 흙이 지니는 물성도 물성이지만, 저 자신이 지니는 고국의 흙에 대한 감성이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요?
【 질문 6 】
흙과 더불어 물을 작업할 때 즐겨 사용하고 계신데요.
흙과 물의 조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어떤 점을 제일 중요시하시나요?
【 답변 】
동양철학에서 우리는 이상적인 공간으로써 자연, 우주를 흔히 다섯 가지 원소의 구성으로 이해합니다.
이 이상적이고 본질적인 공간은 이 5원소, 즉 오행의 상극과 상생으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요.
또한, 서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해 가스통 바슐라르에 의해 발전한 4원소론을 같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제 작업은 이 다섯 가지 근원소들의 직접적이고 상징적인 사용을 통해, 화면이라는 회화적 공간 안에서 이상적이고 근원적인 공간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업입니다.
말씀하신 '흙'과 '물'이 있고요. 제가 주로 사용하는 '수묵'이 있는데, 이 묵은 불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화'기를 의미하죠?,
그리고 바탕을 이루는 천이나 종이는 '나무목'을 의미하고, 마지막으로 캔버스 위에 밑작업으로 사용되는 펄 성분에서 오는 은분은 상징적인 '금속'성을 의미하게 됩니다.
제 작업은 '본질'과 '근원'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질문 7 】
작업 공정이 유난히 복잡하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과정에 제일 중점을 두고 작업을 하시나요?
【 답변 】
작업 과정은 어느 과정이라고 해도 소홀한 부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정에 맞게 강조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저는 흙과 캔버스 바탕을 준비하는데 시간상으로 많은 할애를 하게 됩니다.
【 질문 8 】
프랑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채성필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배용준 씨가 작품을 여러 점 샀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 답변 】
네, 지난 전시에서 만나게 되어서 좋은 인연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배용준 씨와 대화를 나눠보면, 문화에 대한 관심이 참 많으세요, 안목도 좋으시고요.
컬렉터로서도 늘 겸손한 모습으로 작가를 존중하는 모습은 참 감사하죠.
【 질문 9 】
곧 전시회를 통해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신데요.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을 소개를 좀 해주시죠.
【 답변 】
제가 흙이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20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표현 방법의 변화는 있었지만, 흙에 대한 전반적인 주제의식에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앞으로도 근원적인 공간으로서의 흙에 대한 주제는 계속될 듯합니다.
이 주제 안에서 '바람의 땅'이라는 시리즈가 소개될 예정인데요.
이 작품들은 9월 16일부터 경기도 광주 소재의 영은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과, 비슷한 시기에 열리는 KIAF에 소개될 예정입니다.
【 질문 10
끝으로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답변 】
화가로 살아가며, 어느 날 문득, 예술이라는 길에는 지도도, 목적지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작품활동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할 테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과정일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가는 길, 그 길이 아마도 제 길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