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발전할수록 빈곤, 청년실업 등의 많은 사회문제가 생깁니다. 이를 방치하면 사회적 취약계층이 생기고 이들은 빈곤층으로 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취약계층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금융을 만든 CEO가 있습니다. 바로 (재)한국사회투자의 이종수 대표입니다. 사회적 금융은 사회적 소외계층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기관이나 프로젝트 등에 자금을 대출해줘 그들의 자활을 돕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사회적 금융을 만들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름다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그의 이야기를 MBN ‘정완진의 The CEO’ 제작진이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학창시절을 돌아본다면?
제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군사정권으로 인해 학교에는 경찰들이 머무르고 있었고, 학생들은 이에 맞서기 위해 밤낮없이 데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가득 찬 사회를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공부보다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때 학생운동을 하며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높였고,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사회생활은 어땠나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취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원조회를 하지 않는 외국계 은행에 입사했습니다. 서울, 홍콩,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은행을 설립하는 등 약 20여 년간을 금융권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캄보디아에 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갔습니다. 당시 캄보디아는 내전 중이었는데, 사회는 부정부패로 가득 차 있었고 국민생활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런 현실을 보니 불현듯 대학 시절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학생운동에 앞장서며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현실에 안주하고 눈과 귀를 닫아버린 제 자신이 되었더군요. 스스로를 각성하며 그날부터 저는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Q. 어떤 방법을 통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나요?
그러던 중 개발도상국 소득증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 관계자를 만나 ‘농촌 크레디트’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때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해 처음 접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무담보 무보증으로 소액자금을 대출해줌으로써 그들의 경제활동과 자활을 지원하는 제도였습니다. 농촌 크레디트는 농촌에서 실행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였고요. 제방 공사에 필요한 네트와 롤을 만들 수 있는 재료인 코코넛 열매를 농촌 빈민들에게 주면, 그들이 제품을 만들어 소득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내전으로 인해 프로젝트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프로젝트는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했지만 저는 이를 통해 앞으로 제가 살아갈 길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Q.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계기는?
제가 가야할 길이 확실히 정해지자 본격적으로 마이크로크레디트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그때 인도네시아 노동부로부터 인도네시아 농촌 빈민들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진행한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수석컨설턴트 자리를 제안 받았습니다. 농촌 크레디트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터라 저는 곧바로 수락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농촌 현장을 다니며 농촌 빈민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직업훈련을 거쳐 경제적으로 자립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이크로크레디트의 개념을 익히고 그것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Q. 사회연대은행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그러던 중,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돈을 빌리고 싶어도 담보와 보증이 없어 빌릴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이크로크레디트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해보기로 결심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 비율은 30% 이상으로 매우 높습니다. 자영업은 5년 이내에 망할 확률이 80%가 넘는데다가 외환위기 이후여서 대출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나긴 고민과 연구 끝에 RM(relationship manager)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대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에게 담당 전문가를 배치해 지속적으로 그들을 관리해주는 시스템입니다. 한국에 적합한 모델을 찾고 난 뒤, 삼성에서 여성가장을 돕기 위한 기금으로 10억 원을 내놓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받는 자격은 법인이어야 했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저는 5천만 원의 자금을 모아 2012년 12월 사회연대은행을 출범시킨 것입니다.
Q.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활동은 어떠했나요?
삼성으로부터 지원 받은 10억 원으로 ‘여성가장 창업지원사업’팀을 꾸려 RM시스템을 토대로 사업 아이템 선정부터 장소 물색, 금융 지원 등을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뜨개질이나 수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인 ‘실로 여는 세상’이 문을 열며 성공적인 첫 대출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분야를 막론하고 기업, 은행, 학교 등 여러 곳으로부터 재원을 지원받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음식점, 놀이방, 옷가게 등 창업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창업한 이후에도 수시로 찾아가며 사업에 있어 애로사항이 있는지 파악하고, 부족한 부분은 전문가를 통해 컨설팅을 해주며 사후관리까지 확실하게 해주었습니다.
Q. 사회연대은행 설립 당시 사회적 금융에 대한 인식이 낮았을 때인데, 힘들었던 점은?
하지만 사회연대은행을 운영하면서도 여전한 고민거리는 대출을 위한 재원 마련이었습니다. 그때, ‘휴면예금’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휴면예금은 국민들이 은행에 돈을 맡겨놓고 몇 년간 찾아가지 않아 그 액수가 4천억 원에 달했습니다. 만약 그 재원을 활용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때마침 공청회장에서 발표할 일이 생겨 휴면예금을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자고 의견을 냈고, 노무현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도 있어 건의도 해보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취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2월부터 휴면예금을 관리하는 재단이 생기는 것으로 결정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재단을 정부가 맡아 운영하면서 휴면예금이라는 재원은 미소금융을 탄생시키며 재원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쪽으로 돈이 몰리면서 사회연대은행은 급속도로 위축되었습니다.
Q. 재단법인 ‘한국사회투자’를 만든 이유는?
상황이 나빠지자 저는 미소금융과 차별화된 모델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사회연대은행에서 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자영업을 통한 빈곤 해소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빈곤 문제는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구조로 인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원 대상을 ‘개인’이 아닌 ‘조직’이나 ‘기업 프로젝트’로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개인에서 벗어나 대상을 넓혀 사회적 구조에 지원을 한다면 사회문제해결에 좀 더 근본적이고 파급력 있게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연대은행의 여러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재단법인 한국사회투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Q.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나요?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청년․소셜벤처 등을 대상으로 융자를 해줌으로써 그들의 좀 더 나은 경영활성화를 지원해주고 이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에는 사회적가치평가네트워크인 ‘SIEN’을 발족해 학계, 연구기관, 평가기관, 투자기관, 정부기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교류도 하고 있습니다. 사회
Q. 앞으로의 계획은?
다양한 투자적 복지의 아이디어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사회적 금융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함으로써 사회적 취약계층들에게 희망을 주고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