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많이 바뀌었어요.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디지털 시대가 왔는데 영화는 아직도 '스크린'이란 프레임이 갇혀있습니다. 그 틀을 넘어서 영화의 인식을 확장할 때입니다.”
지난 19일 서울 시청 옆 프레스센터에서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51)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31일 선임된 신임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 장르, 형식의 틀을 허물고 영상 매체라는 큰 틀에서 영화를 바라보려고 했다.
지난 한해 극장 관람객은 2억명. 영진위는 국내 영화 산업의 진흥을 지원하는 준정부기관이다. 그는 3년 임기의 역점 과제에 대해 "풀랫폼을 다변화하겠다. 아직도 영화 매출의 대부분을 스크린에 의존한다.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해 영화가 관객을 만나는 접점을 넓혀나가겠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영화진흥위원회와 어떤 인연이 있나.
▶영진위원회와 인연이 많다. 공부할때부터 위원회를 자주 드나들었고, 영진위 산하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교무위원을 맡았다. 직원들을 많이 안다. 영진위 위원으로 추천이 돼서 위원회 활동도 했다.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 배급 유통에 많이 신경 썼다. 제작지원 심사를 하면서 웬만한 영화들은 많이 봤다. 영화계에 아는 분들도 많다.
-어떤 점이 위원장으로 선임되는데 어필한 것 같나
▶별도 준비는 안했다. 나는 영화산업쪽 애니메이션 산업쪽에 계속 있어서 산업 전반을 잘 알고 그 분야의 감각을 익히고 있다. 그런 점이 어필한 것 같다.
-임기내 역점 사업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 진출이다. 두번째는 다양한 플랫폼 개발이다. 80%가 스크린에 집중돼있다. 다양한 플랫폼을 개발하겠다. 세번째는 스태프들 처우 개선이다. 제작을 해보니 현장 인력의 처우 개선이 중요하다. 또 원로 영화인들의 복지와 처우 개선도 신경쓰겠다. 그분들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원로 영화인분들을 만났을때 열정이 느껴졌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영화인들의 열정이다. 시장이 작고 적은 예산으로 만들다보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다. 또 몸을 던져서 만든다. 열정은 세계 최고다. 한정된 자원으로 만든 우리의 영화들은 기획이 기발하다.
-한해 관객이 2억명이 넘는다. 한국 영화가 아시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런데 영진위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괴롭다. 전통이 있는 기관이고 한국 영화 발전에 공로가 크다. 옛날에는 영진위가 녹음, 편집을 다했다. 그런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는 기금운용이라는 한계점도 있고, 영비법의 올드한 면도 있어서 활동에 제약이 있기도 하다. 국회나 여러 단체와 접촉해 발품팔면서 예산을 끌어오려고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영진위 기능이 영화 후반작업 지원에서 정책 지원 쪽으로 넘어왔다. 현재 기술인력은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
▶구체적인 전략은 지금 말씀드리기 이르다. 다만 글로벌 시장진출은 기술사업부와 연관돼있다. 디지털 쪽 업무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돈으로만 지원된다는 인상이 있어서 (기술 인력)지원을 하는 쪽으로 생각 중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골칫거리다. 이게 매각이 돼야 부산에 영진위 신사옥을 짓지 않나
▶남양주 촬영소가 팔리도록 노력하겠다. 부산으로 이미 이전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서울로 올라갈 순 없다. 빠른 시일 안에 부산에 정착해야 한다. 제 방(영진위 사무실)에서 보면 (신사옥) 부지가 보인다. 남양주 촬영소는 누군가가 살 것이다. 가격이 문제일뿐. 종합촬영소를 유지보수 하는 것도 큰 돈이 든다. 팔아야 한다.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
-독립영화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양성 영화, 독립영화, 예술영화 통합하는 다른 의미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같은 틀안에 ….
(그는 이부분을 말하면서 "여러 단체들이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독립영화는 계속 지원할 것이다. 고민 중”이라고 했다.)
취임 후 그는 부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영화계 원로들, 각계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원로 영화인들 복지 개선과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에 힘쓰겠다. 현장에서 일해보니 그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그는 2008년 애니메이션 제작사 KNP 픽쳐스에서 애니 '나라카'의 총괄 감독을 맡았다. 생체실험을 모방한 연쇄살인사건의 배후를 파헤치는 SF스릴러물은 당시 파일럿 제작에 그쳤다.
"제가 시나리오를 썼죠. 그런데 제작에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중단은 됐지만 다시 하고 싶은 열망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인들의 열망을 이해할 수 있어요.”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현재 휴직)인 그가 선임됐을 때 영화계는 "비전문가 출신”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그는 영진위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설립을 주도했고, 영진위 위원으로 산업 전반을 들여다 볼 기회가 많았다. 영화 타이틀 제작도 했다. 홍대 시각디자인학과, 미국 UCLA에서 영상 매체 제작을 배웠다. 한때는 청계천 상가를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요. 결국 영화도 CG를 기법으로 한 영상매체라는 점에서 애니메이션과 같습니다. 실사 촬영은 한적이 없지만 언제나 영화 산업 안에 있었어요. 영화는 우연이 아니고 운명이에요.”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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