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에서 11월까지 수요일 저녁이면 초중고 학생들로 북적이던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선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평소 잘 보기 힘든 고급 승용차들이 박물관 안으로 한꺼번에 줄을 지어 들어온다. 박물관측이 지난 200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창조적 경영 지도자 최고위 과정’(Creative CEO Course) 교육을 수강하기 위해 몰려드는 각계 명사들의 행렬이다.
인문학 붐이 불면서 대학, 갤러리 등 여러 기관·단체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문화강좌를 쏟아내지만 참여 인사들의 수준이나 규모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의 최고위 과정을 따라오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해 8기까지 총 258명이 이 곳을 거쳐갔다.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등 경제계, 공기업대표, 법조계, 주한외교사절 등 각분야에 걸쳐 쟁쟁하기 이를데 없다.
재계·금융계에서는 구자열 LS회장, 구학서 신세계 고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신헌철 전 SK 부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이동욱 무림제지그룹 회장, 이병만 경농 회장, 이수영 OCI회장, 이윤우 삼성전자 상임고문, 정광은 한국후지제록스 회장, 한준호 삼천리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 허태수 GS홈쇼핑 대표이사, 홍석조 보광훼밀리마트 회장이 최고위를 수료했다. 이들 가운데 구자열 회장, 김정태 회장, 김윤 회장, 이동욱 회장, 이수영 회장, 함형준 회장, 허진수 부회장, 홍석조 회장은 부부가 함께 과정에 참여해 남다른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법조계는 김두식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도기영 법무법인 국민 대표변호사 등이, 문화계에서는 최태원 SK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이사 등이 눈에 띈다.
숱한 문화강좌프로그램 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난히 집중적인 조명을 이유는 뭘까.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내 최고 최대 수준의 유물 컨텐츠가 경쟁력의 일등공신이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게 회원들의 공통된 얘기다. 한국역사의 흐름, 한국의 생활문화, 동서의 만남, 동서양의 회화, 건축과 삶의 이야기, 여행과 박물관 등의 다양한 흥미로운 주제로 과정이 꾸며지며 매 강좌에 초빙되는 강사도 각분야의 독보적인 석학들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공연 및 전시회 관람, 문화유적 탐방과 해외유적 답사 등 체험프로그램도 병행해 반응이 뜨겁다.
김석남 코리아비즈 대표컨설턴트는 “1기부터 8기까지 전 과정을 이수했는데 이런 회원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딱딱한 이론강의 중심이 아니라 이슈별로 다채로운 국내외 현장 체험이 준비돼 있어 흥미를 끄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과정이 종료된후 기수별 모임도 활성화해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며 “술자리 대신 큐레이터 등을 초청해 열띤 토론회가 벌어지기 일쑤지만 모두들 열성적으로 참석한다”고 덧붙였다.
박물관은 20일까지 9기 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 올해 프로그램의 주제는 ‘인물로 보는 세계 문화’이며 사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세계인의 삶과 문화를 혁신해온 인물들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4월 15일부터 11월 25일까지 24주 동안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강연을 진행하고 격주로 박물관
이수미 박물관 교육과장은 “국가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혁신과 발상의 전환이며 발상의 전환은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온다는 취지로 역사 속 거인, 문화적 혁신가들을 조명해 위기 해결책을 탐색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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