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첫 데이트에 나온 10대들처럼 어색하게 와인을 마시며 마주앉았다. 자신과 한 팀이 되어주길 요청하는 간곡한 설득에 그녀는 지지연설로 보답했다. “버락 오바마는 제가 지지하는 후보입니다.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야합니다.”
뼈아픈 패배를 인정한 덕분에 그는 생각도 못한 기회를 얻었다. 국무장관 자리였다. 내각엔 관심이 없었고, 뉴욕주 상원의원으로 돌아가길 원했던 클린턴은 장고에 빠졌다. 거절 전화를 하려하자 백악관 비서실장 람 이매뉴얼은 대통령이 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며칠밤을 지새운 끝에 수락했고, 67대 국무장관에 올랐다. 어제의 적은 백악관에서 4년간 700번 이상 만난 파트너가 됐다.
클린턴은 2013년까지 112개국 160만㎞를 여행하며 미국의 제1 외교관 자리를 이끌었다.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세계 금융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결정해야했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 혁명의 물결에 휩쓸린 중동도 문제였다. 치열한 외교전쟁을 치른 덕분에 클린턴은 7년만에 다시한번 기회를 얻었다.
12일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힐러리 클린턴에 관한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2014년 직접 쓴 자서전 ‘힘든 선택들’(김영사)과 백악관 출입기자가 쓴 평전 ‘HRC 힐러리 로댐 클린턴’(와이즈베리)가 나란히 나왔다.
‘힘든 선택들’에서 그는 국무장관 시절을 통해 “경제불평등, 인권, 기후변호, 에너지 혁신, 환경과 보건 등 21세기 지형을 새롭게 바꿀 흐름에 대해서도 범세계적 관점을 얻게 됐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과오도 솔직하게 인정하는 자서전이다. 2002년 부시 정부 시절 상원의원으로 그는 이라크 참전 결의안을 찬성한 것을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일 것”이라면서도 “정말 잘못한 것”이라고 시인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그에게 중요한 외교적 전략지역이었다. 46명이 희생당한 천안함의 침몰에 대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한목소리로 이 공격을 규탄했지만, 중국은 북한을 직접 지명하거나 더 강경한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며 중국의 모순을 꼬집는다. 방한 당시 비무장지대를 찾은 번영한 한국과 대비된 공포와 기근의 땅인 북한을 마주한 상념을 털어놓기도 한다. “서울의 이화여대에서는 젊은이들에게 손을 내밀면 전통적인 외교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폴리티코’의 조너선 앨런과 ‘더 힐’의 에이이 판즈는 힐러리의 친구 동료 등과 200건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해 ‘HRC’를 썼다. 이 책은 “정치인에게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국무장관직을 수행했음에도 대권으로 가는 완벽한 디딤돌이 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눈에 띄지 않게 임무를 해내야하는 유능한 외교관 자리를 수행”하며 “4년동안 국내의 정치 싸움에서 잠시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고, 남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외교경력을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경선시절 지지율은 48%였지만, 장관직 수락직후 지지율은 65%로 껑충 뛰었다.
두 책에서 클린턴은 최근 몇년간 가장 많은 질문이 대선 출마 여부였다고 밝히면서도 대답을 내놓진 않았다. 하지만 지도자로서의 비전은 숨기지 않는다. CNN 토론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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