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미아동 성신여대 운정그린캠퍼스 C동 강의실 212호에는 또 하나의 간판이 벽에 붙어 있다. 바로 ‘구자승 미술관’이라는 간판이다. 강의실 입구에는 서양화가인 작가의 프로필을 담은 동판이 붙어 있고 외벽과 내벽에는 그의 대표작인 여성 누드화와 정물화가 걸려 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인 최만린의 작품은 B동 1층 로비에 놓여 있고, C동 2층 204, 208호는 제정자 류민자의 미술관이다. 강의실마다 10여점의 작품이 걸려 있다. 역시 예술원 회원인 전뢰진 유희영 민경갑은 지하1층에 있는 성신미술관에서 작품이 상설 전시 중이다. 지하에서 지상 7층까지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B동 중앙 통로는 백남준 김창열 판화, 한만영 송현숙 주태석 유화 등이 잇따라 펼쳐지는 원형 미술관이다.
성신여대 운정캠퍼스가 거대한 미술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대학 내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지만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강의실과 이동 중 지나가는 복도, 로비에 현대미술 158점을 거는 일대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애초 돈암동에 설립된 성신여대는 2011년 미아동에 운정캠퍼스를 확대 준공했으며 설계 때부터 그림을 걸 수 있게 층고나 구조를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의실에 작품을 거는 ‘국내 1호’ 캠퍼스 이색 뮤지엄은 지난 14일 개관했다. 참여작가는 서양화·한국화·조각 분야를 총망라한다. 서양화가로는 구자승(74) 김영재(86) 류민자(73) 유휴열(66) 유희영(75) 제정자(78) 최예태(77) 화백이, 한국화가는 민경갑(82), 조각가로는 전뢰진(86) 전준(73) 최만린(80) 선생들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인사동과 사간동을 따로 방문할 필요 없이 수업을 듣거나 쉬는 시간에 현대미술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일상 생활 속에 미술이 침투한 것이다. 원로 작가 입장에서도 고무적이다. 개인미술관을 열 경우 건축비가 상당하고 운영비와 관리비가 적지 않아 후대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다. 국공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더라도 상설 전시관을 갖기가 어렵다. 그러나 대학 캠퍼스의 경우 사립 대학이라 할 지라도 공공기관의 성격이 커 관리를 믿고 맡길 수 있으며 상설 전시 공간을 갖는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살아있는 예술품으로 활용한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작품 전시와 관리를 책임 지는 대학 측은 고가의 미술품을 직접 구입하지 않고도 학생들의 정서 함양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어 1석2조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예술에 관심이 높은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과 김영석 마니프조직위원회 대표가 의기투합해 이뤄낸 성과다. 캠퍼스에 걸린 작품들은 영구 임대 형태로 작품 교체나 이동은 작가의 동의를 받는다. 정병헌 성신여대 박물관장은 “아무리 대학이 취업과 생존에 내몰리는 경쟁의 공간이라고 하지만 인문학을 배우고 창의력을 키우는 산실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며 “성신여대 돈암동 캠퍼스도 점차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개관한지 10여일이 지났지만 학생들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교육학과 2학년생인 박은진 씨는 “수업 들으러 가면서 문화 생활도 하고 작품도 보니 미적 감각이 길러지는 것 같다. 캠퍼스 분위기가 매우 밝아졌다”고 말했다.
김영석 대표는 “어느 노 화가가 관리·소장 상속 문제 때문에 작품 몇 점만 남겨놓고 불태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며 “국내 원로 작가 중 작품이 경매에서 거래되는 경우는 39명 정도 밖에 안 된다. 국공립미술관에 들어갈 기회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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