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 <매경DB> |
1862년 보들레르는 ‘라 프레스’지의 주간인 아르센 우세에게 산문시 뭉치를 보냈다. ‘파리의 우울’의 서문 격인 이 글에는 보들레르가 새로운 시의 형식에 관한 예술적 야망이 담겨있었다.
명문학교에서 퇴학 당하고, 술과 마약 여자에 탐닉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보들레르는 1857년 ‘악의 꽃’을 발표한 뒤 미풍양속을 문란케 한 죄로 기소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불행에 맞서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품고 ‘악의 꽃’을 다시 펴내는 과정에서 ‘어떤 시적인 산문’에 관한 야망은 구체화 된다. ‘파리의 우울’은 그렇게 태어나게 된, 시적 선율이나 박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거친 산문시집이다. 알레고리가 가득하고 기승전결을 갖춘 전통적 이야기의 성격도 없다.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70)가 새롭게 번역한 ‘파리의 우울’(문학동네)가 나왔다. 올 초부터 암투병을 하면서도 번역을 포기하지 않은 노작(勞作)이다. 이 책은 근대화의 폭력성을 혐오하면서도 파리의 몰골을 사랑한 보들레르의 혁명적인 산문시 50편이 실린 시집. 기존의 번역본들과는 차별되는 충실한 주해가 매 시마다 실렸다.
50편의 시에는 사람을 제목으로 삼거나 제목에 사람이 들어 있는 시가 20여편에 이르며, 사람을 주제로 삼는 시도 많다. 아이들, 여자들, 예술가들, 가난한 사람들을 그는 노래했던 것이다. 또한 이 시집은 보들레르의 예술론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미의 연찬은 하나의 결투, 그 싸움에서 예술가는 패배하기도 전에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예술가의 고해기도’)
현대시의 운명에 관한 보들레르의 예언과도 같았던 이 시집은 베를렌, 랭보, 로트레아몽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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