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충무로 의외의 수확은 ‘연애의 온도’였다. 헤어진 연인이 이별 후에도 지리멸렬하게 사랑을 이어가는 과정을 재기발랄하게 그린 이 영화는 금새 입소문이 났다. 감독은 대학졸업(서울예대 연출전공)과 단편 하나가 경력의 전부인 노덕(35)이었다. 게다가 영화판에서 보기 드문 여자 감독이니 그에 대한 궁금증은 한껏 치솟았다. 지난 22일 그의 두번째 작품 ‘특종:량첸살인기’가 개봉했다. 방송국 기자인 허무혁(조정석)이 우연한 제보로 연쇄살인범에 관한 특종을 하게 되지만, 이내 거짓임을 알게 되고 오보를 숨기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무시무시한 스릴러물처럼 생긴 포스터와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웃음과 공포가 어우러진 잔혹극이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오는 처절한 코미디가 관객을 빨아들인다.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웃기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장르든 유머러스한 공기를 담고 싶다”고 했다.
“아이러니함을 좋아해요. ‘연애의 온도’때도 이별 후에 즐거워하고 재회하니까 지루해하는 연애의 모순을 다뤘었죠. 이번에는 진실을 얘기해야 하는 언론인이 거짓을 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말려드는 이야기예요.”
이 작품의 태생도 아이러니하다. ‘특종’은 2011년 완성됐는데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라며 거절했었다. 하지만 ‘연애의 온도’의 흥행 후 2013년 ‘특종’의 영화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연애의 온도) 흥행 후에도 ‘특종’ 시나리오는 거의 손 대지 않았는데…. 그 사이 무엇이 변한걸까요. 하하”
영화화까지 7년이 걸렸다.
“20대때 습작을 많이 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훈련이 됐어요. 영화는 사람들의 의견이 많으니까 창작자의 확신이 중요해요. 단, 그 믿음은 근거가 있어야겠죠.”
‘큰 덕’(德)자가 이름인 그는 호방하고 화통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자기 객관화를 잘해요. 감정에 휘말려서 펑펑 우는 일이 없어요. 그래서 시니컬한데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네요.”
현장에서 싫은 소리를 해야할 때는 감정이 상할 것을 각오하고 말한다. “영화는 결과가 제일 중요하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해야죠.”
그는 여성이어서 불리한 점이 많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능력지상주의니까 결과만 좋으면 남자든 여자든, 대학원졸이든 초졸이든 상관없어요. 오히려 영화판이야말로 계급장 떼고 일하기 좋은 곳이죠.”
쿠엔틴 타란티노나 코엔 형제의 작품을 몰아 보면서 “카메라 뒤에 있는 존재가 느껴져”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좋아하는 영화가 생기면 비디오 가게에서 포스터를 몰래 떼갖고 오곤 했다. 마음은 뜨거웠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처음 취직한 영화사에선 3개월 버텼고, 돈이 떨어져 무역회사에 취직도 했었다.
“긴 암흑기였죠. 영화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기로에 오랫동안 서있었어요.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다리다가 미쳐버릴 것 같아서 쓴 게 ‘특종’이에요. 정신없이 휩쓸리는 이야기가 필요했어요. 드라마가 쎄니까 현실을 잊게 되더라고요.”
그 스스로 동아줄을 만들고 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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