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남성도 45세쯤 되면 갱년기 증상을 보인다고 봤다. 체력이 떨어지고 탈모 증세를 겪는다. 정력도 급격히 감퇴한다. 회사에선 성과를 내지 않으면 자진 퇴사도 감내해야 하는 중간관리자다. 은퇴한 부모도 모셔야 하고, 아이들 양육은 날로 버거워진다. 꼼꼼하고 성실한 취재에 감탄하면서도, 팍팍하고 신산스러운 현실에 탄식이 절로 나오는 책이다.
문제는 몸의 노화가 직장을 비롯한 여러 위기와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다. 정력과 건강을 회복하면 직장 일도 잘 풀리고 모든 것이 젊었을 때로 돌아가리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2007년 겨울에 처음 만나 7년 간 인터뷰한 스토 씨(가명·47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갱년기를 극복하려고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발기부전 증세가 어느 정도 없어지자 직장인으로써, 남성으로써 자신감이 생겼다. 급기야 그는 스물네살짜리 여직원과 바람을 피웠다. 이혼과 재결합에 이르는 6년동안 그에게 남은 것은 극도의 허무감뿐이다. “늙는게 무서웠어요.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 것이 (바람의)직접적인 계기였어요. 그러나 증상이 회복된 뒤에도 정력을 키우고 싶어서 치료를 받았어요. 늙음에 저항하고 싶었던거죠.”
‘육아남(아이 키우는 남자)’ 열풍은 뭇 일본 남성들을 가정에서 소외시켰다. 그럼에도 육아남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한 남성의 말이다. “육아남이 주목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사실 이제는 무섭기까지 해요. 언론과 방송에 육아남이라고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문직 프리랜서잖아요. 그 사람들처럼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고 해도 일반인이 똑같이 따라 하기는 어려워요. 평범한 회사원인 제가 육아에 힘을 쏟는 건, 출세 경쟁엔 실패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라도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탓이 커요.”
일본도 40대로 접어들면 직장 생활이 험난해진다. 우선 자진 퇴사 압력을 받는다. 재취업은 어렵다. 그나마 정규직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재 40대인 단카이 주니어 세대(1970~1974년생) 중엔 비정규직이 많다. 한 사람의 말이다. “정규직이 못 된게 내 탓이 아니라고요.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는 처음부터 우리 같은 사람들과 출발선이 달랐잖아요. 왜 우리는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를 당해야 하는 겁니까?” 일본 중년남성이 겪는 ‘직장표류’ 현상에는 세대 문제까지 겹쳐 있다.
일본에선 노인을 개호(介護)하는 사람 셋 중 하나가 남성이고, 이들 중 3분의 1이 40~50대다. 중년의 아들이 부모를 돌보는 가정이 상당수라는 얘기다. 어머니 연금에 기대서 살고 있는 한 남성의 증언이다. “한밤 중에 비명을 지를 때도 있어서 잠도 잘 못자요. 놀라지 마세요. 목이라도 졸라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일찌감치 ‘인생 100세 시대’에 접어든 일본에서 부모를 돌본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효도표류’의 시대다.
일본 남성 다섯 가운데 하나는 평생 미혼으로 산다. 저자는 “‘애정표류’도 일본 중년 남성이 겪는 중대한 경험”이라며 “‘평생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낙인을 찍어서 결국 결혼을 방해하는 결과로 나타나선 안된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200명의 사례라면 그 어떤 임상 연구보다 값지지 않을 수 없다”며 “일본과 우리가 10~20년 정도 시차를 둔 싱크로율을 고려하면 일본에서 먼저 십 년간 쌓아온 경험을 들춰보는 작업이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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