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밝아보이나요? 그렇다면 정말 기뻐요. 드디어 제 안의 진짜 ‘태욱이’랑 화해했거든요.”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이토록 해맑게 답하는 남자. 46세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멋들어지게 부스스한 머리칼에 푸른색 야상점퍼, 헐렁한 청바지와 조깅화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직원 200여명을 거느린 가족 종합 서비스기업 아이패밀리SC의 대표이사이자 어딜 가든 통기타와 함께 하는 로큰롤 가수 김태욱 씨다. 가수에서 사업가로, 또 여기서 ‘사업하는 뮤지션’으로 인생의 ‘시즌3’를 시작한다는 김태욱 대표를 지난 6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아이패밀리 사옥에서 만났다.
최근 김 대표는 11년 만에 싱글 앨범을 냈다. 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곡절이 참 많았다 . 15살 때부터 아마추어 밴드에서 보컬로 활약하다 솔로가수로 데뷔, 5개의 앨범을 발표하며 로큰롤 가수의 길을 걷던 중 느닷없이 성대 신경 마비 진단을 받았다. 1998년 일이다. “그때 저는 죽어버렸죠. 내면의 진짜 ‘저’를 죽여야 했어요. 어릴 적 TV에서 존 레논을 보며 ‘로큰롤 스타’라는 꿈만을 향해 달려왔었거든요.” 그후 더 괴로워하다간 큰일나겠다 싶어 뮤지션의 꿈은 애써 누르고 그 빈 공간에 벤처 사업가라는 새로운 꿈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4인조 밴드를 할 때 각기 다른 멤버들 간의 하모니에 중독돼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벤처는 록밴드와 비슷해 보였죠. 각자 다른 개성과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렇게 2000년 국내에선 불모지나 다름없던 웨딩사업을 시작했다. 이 해 배우 채시라 씨와 결혼도 했다. 첫 월급을 2006년에나 탈 정도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김 대표와 창립 멤버, 직원들의 헌신으로 회사는 차근차근 성장했고 웨딩·여행·가족행사 등을 아우르는 종합 서비스기업이 됐다. 지난 6월 영국 BBC의 간판 비즈니스 프로그램 ‘CEO구루’에서 주목할만한 한국 기업으로 단독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올 초 국내를 덮친 메르스(MERS)의 여파로 사업이 휘청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벤처기업 고유의 ‘맷집’이 줄어들면서 김 대표에게 두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배터리’가 방전된 느낌이었다.
“제가 지친다고 하면 남들은 욕하더군요. 성공한 벤처사업가에 유명한 여배우를 부인으로 두고 남부러울 게 없을 거라며… 하지만 전 행복하지 않았어요. 어디에서나 약한 모습 보이지 않아야 해서 외롭고 답답했죠.”
회사의 부진에서 온 슬럼프는 역설적으로 회사에서 영감을 받은 음악으로 극복했다. 하루는 한 회사 직원과 소주 한 잔을 하던 중 그에게 입사 전부터 작곡가의 꿈이 있었다는 걸 듣게 됐다. “그 친구를 포함해 우리 회사 멤버들이 각자의 꿈을 공유하고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마침 지쳐있던 저도 제 안의 ‘뮤지션 태욱이’를 꺼내고 싶었던 차였고요.” 김 대표가 작사하고, 작곡의 꿈이 있던 직원 이종현 씨가 작곡해 탄생한 곡이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김태욱의 마음에는 그대가 살고 있나봐’다. “김현식의 노래에는 그대가 살고 있나 봐/ 내사랑 내곁에 들으며 한잔 두잔 또 꺾어/ 김태욱의 마음에도 그대가 살고 있나봐/ 잊는다 있겠다 해놓고 다시 그리워 불러봅니다.” 소박한 하모니카와 기타 반주에 투박하고 박력 있는 창법으로 부르는 가사에는 김 대표가 시련을 겪을 때 위로를 준 고 김현식의 노래 ‘내사랑 내곁에’가 녹아있다.
CEO의 삶과 로큰롤 가수의 삶. 둘중 어디에 더 마음이 가냐는 질문에 그는 “저는 사업하는 뮤지션이에요. 저와 종현이가 음악을 하면서 회사 안에서 활기가 돌고 고객들의 반응도 더 좋아졌어요. 제게 음악은 사업가로서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거죠”라고 답했다. 벌써 다음 싱글 앨범도 준비중이란다. 발표할 곡의 가사 중 일부는 “아구찜 아구찜, 입에 짝짝 붙지~” 회사 지하에 있는 자그마한 밴드합주실에서 기타를 잡고, 드럼 치는 임씨와 ‘아구찜’ 노래를 부르며 리듬을 맞춰보는 김
“사업을 하건 음악을 하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꿈이 무엇이냐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김 대표의 답이다. 이처럼 긍정적이고 해맑은 태도가 그를 제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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