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전미도는 바라만 봐도 향이 느껴지는 배우다. 롯데로 ‘베르테르’ 무대에 올랐을 때는 수국 향이, ‘원스’의 걸로 관객들을 만났을 때는 라일락 향이 느껴졌다. 그런 전미도가 들꽃 향을 풍기면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연극 ‘흑흑흑 희희희’를 통해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에서,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온 그는 진하지 않지만 결코 잊을 수없는 들꽃 향기를 품고 무대를 물들였다.
‘흑흑흑 희희희’는 신파극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웃음이 터지는 작품이다. 웃음이 나오면서도 눈물이 나고, 눈물이 흐르다가도, 이내 웃음이 터지는 극이다. 솔직하고 적나라한 표현으로 감정의 밑바닥부터, 저 끝까지 거침없이 훑는다. 그렇게 눈물과 웃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정화시켜준다.
전미도는 극 중 연백희라는 인물로 관객들을 만났다. 연백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우주비행사가 됐지만, 우주에서 살다가 지구에 돌아와 심장에 문제가 생긴 난치병으로 병원신세를 진 인물이다. 억울함과 죽음을 앞둔 두려움으로 신경이 곤두 서 있는 백희는, 흑철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한다. 진흑철은 사람들을 웃기고 싶었지만, 안티 팬만 100만이 생기고, 호흡을 맞추던 짝에게 버림받은 개그맨이다.
↑ 사진=드림컴퍼니 |
앞서, 길고 풍성했던 헤어스타일로 청순미를 드러낸 전미도는 상큼함이 돋보이는 짧은 단발머리로 무대에 올랐다. 작은 얼굴은 더 작아보였고, 동안에 오밀조밀 사랑스러운 표정은 더 도드라졌다. 특히 따뜻한 내면과 올곧은 강단을 지닌 모습, 어떤 작품에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다가가는 모습은 연백회와 크게 닮아 있었다.
“약 2년 만에 연극무대에 올랐어요. 제가 극단 맨씨어터 소속이기도 하고, ‘터미널’이라는 작품을 극단에서 했는데, ‘베르테르’를 하고 있어서 오르지 못했어요. 작품을 봤는데 못한 것이 후회되더라고요. ‘베르테르’ 끝나고 ‘스위니 토드’하기 까지 약 2달가량이 있어서 ‘흑흑흑 희희희’는 하고 싶다고 했죠.”
극 중 연백희를 보면 공감할 부분이 많다. 아닌 척 하지만, 누구보다 외로운 준재고, 무언가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고 열심히 임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점이 항상 있다는 점은, 사람이라면, 사회를 겪어봤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느끼는 감정이다. 때문에 난치병에 걸려, 수술이 잘못되면 죽을 수 있다는 순간에 놓인 연백희의 모습은, 남의 일 같지 않다. 하지만 표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법하다. 닥치지 않고서야 와 닿지 않는 일을 마주한 셈이니 말이다.
“작품 장르가 독특해요. 신파라고 하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아요. 작품에서 제가 하는 역할이 뭔지, 진흑철이랑 같이 개그를 할 수도 없고. 중요하게 고민한 것은, 백희의 시각으로 보는 작품이고, 특이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라서, 고민을 많이 했죠. ‘이 인물은 한 달 뒤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 있다’는, 그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봤어요.”
‘흑흑흑 희희희’를 보고나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보다도,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라고, 나 혼자만이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누구나 느끼는 것이라고 위로하는 듯하다.
“사실 누구나 죽잖아요. 그것을 마주하고 살지 않을 뿐이지만, 연백희는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혼자 아등바등하는 거죠. 마치 자신만 죽을 것처럼 억울해 하고, 두려워하죠.”
“하지만 꼭 죽음을 앞둔 상황이 아니라도 누구나 맘속에는 고통이 있고, 죽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잖아요. 아픔을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죽더라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극에서는 죽음이라는 상황이 있지만, 연백희의 정서나 심리상태의 변화에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 전체를 통해 내 옆의 사람들을 되돌아볼수 있어요.”
극 중 연백희는 자신의 꿈을 향해 우주로 향하지만, 정작 친한 친구도 없고 남자친구를 진지하게 만난 적도 없다. 보고 싶은 사람을 묻는 진흑철의 물음에 “엄마”라고 답하면서, 우주에 있어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토로하는 연백희의 모습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기 충분하다.
“특수한 상황이지만, 일반화 시켜보면 살아오면서 각자가 매달렸던 부분이 있을 거예요. 저도 연극을 하러 상경한 것이라서, 연백희의 상황에 빗댈 수 있어요.”
‘흑흑흑 희희희’에는 똥, 섹스 등의 단어가 거침없이 튀어나온다. 어찌 보면 일상에서 크게 내서 하지 못하는 표현일 수도 있고, 숨길 수도 있는 단어지만, 작품에서는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관객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덜어낼까도 했어요. 근데 역시 작품은 관객들을 만나야 완성되는 건가 봐요. 무대로 오르고 보니, 그런 얘기가 그냥 사람 사는 얘기일 뿐이더라고요. 극 중에 제가 좋아하는 대사가, 화장실 가는 태림이한데 ‘똥은 살아있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야! 잘 누리도록 해’에요. 살아있는 엄청난 장면이죠. 화장실 가는 것은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사실 굉장히 삶에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알게 됐어요.”
‘흑흑흑 희희희’을 보면서 눈물과 웃음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면서, 주변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죽음이 마치 끝이 아니라고 위로해주는 듯, 마음은 아프지만, 또 영혼은 충만해진다.
“연습하면서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는데 첫 공연이 끝나고 ‘진짜’ 굉장히 묘했어요. 관객들이 웃어줄지도 몰랐고, 극은 신파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또 굉장히 신파는 아니라,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많이 웃고, 우는 모습에서 뭔가가 느껴졌어요.”
때문에 작품을 하면서 꾸준히 만나던 팬들도, 처음 보는 관객들도, 전미도는 ‘흑흑흑 희희희’를 하면서는, 조금 더 달리 보인다고 했다. 극장을 나서면서 한순간 한순간이 달리 보이게 되는 것은 비단 관객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물론 전미도의 연백희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일상을 함께 하거나, 자주 만나는 사람이 아닌데도, 왠지 마음이 다른 공연이랑은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데 마치, 교통사고 당해서 죽음 직전에 갔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한순간 한순간이 귀하게 느껴졌어요. 더 친근해지기도 하고요. 첫 공연이 끝나고, 친한 친구 얼굴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더라고요.(웃음)”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