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열두 번째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세상 밖에 나왔다. 순 제작비 6억 원을 들였고, 두 달가량 촬영 끝에 지난 13일 개봉했다. 정지우 감독의 연출작으로, 담긴 주제는 ‘스포츠 인권’과 ‘일등주의’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은교’(2012) 이래 그가 4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찻집에서 만난 정 감독은 “그간 인권위로부터 열한 번의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스포츠 인권이 다뤄진 적이 없어 (연출 제안을 받고) 한 번 해봐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수영이 스포츠 인권과 잘 맞물리는 소재인 데다 일종의 ‘희망고문’이 담겨 있는 등수인 ‘4등’에 주목하고 싶었다”고 했다.
“4등은 이도 저도 아닌 난처한 등수잖아요. 학원 스포츠에서 3등만 해도 상급학교 진학에 도움이 되고 기록으로도 남죠. 하지만 4등은 정말이지 ‘꼴찌’와 ‘실패’의 대명사거든요. 당장은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좀 더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을 의미하구요.”
영화는 만년 4등 수영선수 준호(유재상)의 삶을 그린다. 초등학생 준호는 오로지 1등만 하라는 엄마(이항나)의 바람을 버거워 한다. 그 바람이 자신의 욕구라기보다 엄마의 개인적인 욕구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작 준호는 수영 그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아이지만 엄마는 이를 외면하기 일쑤다. 그런 모자의 관계는 마치 코치와 선수의 관계처럼 비친다.
정 감독은 “모두가 1등이라는 신기루를 향해 사활을 건 경쟁을 펼치지만 그런 삶이 정작 행복으로 연결되진 않음을 다수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우리 부모세대와는 좀 더 ‘다르게 사는 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모두가 1등이 되는 데 혈안인 사회는 폭력(강압과 체벌 등)이라는 손쉬운 수단에 손 대기 쉬워요. 그러한 문제 의식까지 이번 작품에서 드러내고 싶었어요.”
실제로 극중 광수 코치(박해준)의 폭언과 몽둥이 찜질을 견뎌내는 준호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 폭력이 제 자식의 인권보다 제 자식의 1등을 우선시하는 부모의 방관 속에 자행되고 있음을 상기하면 간담히 서늘해진다. 과거 또 다른 스포츠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한 광수 코치에서 출발해 폭력의 연쇄(광수 코치->준호-> 준호 동생)가 이뤄지는 과정을 지켜볼 때, 이 문제가 시사하는 바가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현실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연출자의 시선은 극중 인물 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통제와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광수 코치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온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든 준호에게 엄마가 던진 한 마디가 그렇다. “준호 맞는 것보다 4등하는 게 더 무서워.” 정 감독은 “사전에 여러 학부모, 코치, 선수 등을 취재하면서 ‘정말 (자녀 교육 현장이) 장난이 아니구나’ ‘살벌하구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런 그는 올해 고교 1학년 외아들을 둔 가장이기도 하다. 인터뷰 내내 진지한 톤으로 일관하던 그는 아들 얘기가 나오자 한층 누그러진 기색이었다. “제 영화 시사회에 아들이 와 준 건 이번이 처음일걸요. 그간 찍은 게 거의 청불영화(청소년 관람불가)였거든
[김시균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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