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1956년생, 올해로 환갑(60세)가 배우 윤석화와 손봉숙도 연극 ‘햄릿’에서는 애교만점의 귀여운 막내였다. 평균연령 68.2세, 연극계에서도 내로라하는 거장이 모인 ‘햄릿’ 20대 청년이라고 보기에 다소 지긋해진 햄릿과 오필리어는 “지금 나이에 이런 역할을 해도 되는가”라고 걱정하기도 하지만, 이에 따른 판단을 관객의 몫으로 맡기기로 하고, 나이가 많은 것이 장점인 연극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7일 오후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2층 로비에서 연극 ‘햄릿’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햄릿’의 지휘를 맡은 손봉책 연출가(69·국립극단 전 예술감독·극단 미추 대표)를 비롯해 배우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유인촌, 윤석화, 손봉숙이 등장하자, 현장은 배우들의 연륜만큼 깊은 위엄과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햄릿’의 프로듀스를 맡은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는 “‘햄릿’을 프로듀스 하는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기대가 많다. 연습장에서 ‘배우 어르신’들께서 행복하게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무한하게 느끼고 있는 작품 중 하나”라며 “앞으로도 이런 행복한 일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작품을 올리는 소감에 대해 전했다.
‘햄릿’은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과 한국 연극사에 획을 그은 배우 출신 연출가 이해랑(1916∼1989)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한국 연극의 거목들이 뭉친 작품이다. 배우 인생을 더하면 422년, 산전수전을 겪은 백전노장들에게 있어 ‘어르신’ 혹은 ‘거장’이라는 단어는 그리 달갑지 않은 수식어였다. 풀로니어스 역을 연기하는 박정자는 “한국 연극의 거장이라는 말이 짐스럽다”고 말했으며, 거투루드를 연기하는 손숙 역시 “어르신 어르신 하는데, 굉장히 귀에 거슬린다. 저는 그냥 배우다. 영원한 배우로 불러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배우들에게 있어 ‘햄릿’은 자신이 처한 현재 나이에 묶여있기 보다는 극중에 있는 이를 극복해 나가는 일종의 과정이었다. 햄릿을 연기하는 유인촌은 “나이는 잊어버리기로 했다. 덕분에 연습장 분위기는 어떤 연극보다도 훨씬 더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마치 연극을 처음 하는 이들처럼 어렵고 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며 “‘재밌게’를 담당하는 이는 막내 윤석화이다. 60살인데 막내이다. 연습장 분위기로 봐서 잘 맞는 연극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예순의 막내 윤석화는 ‘햄릿’의 분위기 메이커이다. “나이가 제일 어리다”고 말한 윤석화는 “선배에게 잘 해야 하는 것이 있어서 기가 죽는 것이 있더라. 기가 죽고 나면 어떤 역할도 못하니, 그 자구책으로 스스로 재미있게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며 “쉬는 시간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재롱도 떨면서 분위기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막내의 발랄함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연기자 선생 역할만 하다가 든든한 배우들을 만났다”고 말한 손 연출가는 “같이 만들어 나간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은 좋은 기회를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욕심이 나는 반면, 이 멤버로 좋은 연극을 만들지 못하면 한국연극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도 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무엇보다 ‘열기’가 뜨거운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 손 연출가는 “이해랑 선생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 없이 좋은 연극을 만들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마음으로 잘 해보겠다”고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나이가 많은 것이 고통이나 장애물이 아니다”고 입을 모은 ‘햄릿’의 배우와 연출가들은 “나이가 많은 것이 장점인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연극을 통한 목표를 밝혔다. 손숙은 “나이와 성별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유인촌이 하는 햄릿을 보면서, 어느 젊은 배우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고정관념 버려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햄릿’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나이를 잊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손 연출가는 “보편적인 ‘햄릿’을 만들고자 한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우리가 만드는 ‘햄릿’은 배우들의 연기 그 자체에 승부를 거는 연극”이라고 연출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손 연출가와 가장 많이 토론을 한다는 정동환은 “무지하게 힘든 것은 손진책 연출자가 저희에게 요구하기를 ‘연기를 많이 했으니 연기 좀 하지 맙시다’고 한다. 연기를 안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손 연출가는 “메타 연극적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출연하는 아홉 배우들의 연기를 쭉 봐 왔다. 새로운 연기, 새로운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은, 연기라는 것을 거둬내고 그 연극을 하는 의식이라고 할까”라며 “보여주는 연극이 아닌 관객과 진솔하게 소통함으로서 느끼는 연극을 해보자는 의미”라고 풀어주었다.
손 연출가의 말이 끝나자 손숙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느냐”고 장난스럽게 딴죽을 건 손숙은 “사실 저희도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 뜻을 알기에 서로의 의견을 맞춰가는 중이다. 재미있는 연극이 탄생할 것”이라고 웃었다.
손 연출가의 아내이기도 한 김성녀는 ‘거창하고 어렵게 말을 하는’ 손 연출가의 통역사 역할을 자처하며 “한 마디로 기술로 하는 연기보다는 마음으로 하는 진솔한 연기를 보여달라는 것”이라며 설명하면서도 “연습실에서 ‘우주를 표현해라’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배우들)은 ‘네가 하라’고 외치고 있다”고 연습실 현장을 묘사하며 현장의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햄릿’은 오는 7월12일부터 8월7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공연된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