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1년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다. 내년에도 세 차례 인상을 예고한지라 연준이 ‘매파’(긴축 성향)로 돌아선 건 확실하다. 향후 나라별 금리인상 기조가 강화될 전망으로, 이제 초저금리 시대는 끝났다.
과연 우리는 다가올 긴축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최근 그 나침반의 하나가 돼 줄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정치학자 마크 블라이스의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다. 그는 긴축 옹호론에 대한 강력한 반대론자다.
“제가 살림을 해 봐서 압니다만, 빚을 잔뜩 진 채 건전한 경제생활을 꾸려가는 집안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총리가 재임 시절 남긴 말로 저자는 포문을 연다. 1979년 집권한 대처는 이 레토릭에 담긴 함의, 즉 ‘긴축의 폭력성’을 제대로 인지했을까. 아마 아닌 듯하다. 저자는 ‘나라의 재정은 집안 살림과 똑같으니 빚을 갚으려면 우리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언설만큼 위험하고, 허술한 논리도 없다고 본다.
물론 이 논리는 수십년 째 전 세계로 유통 중이다. 2008년 재정위기 이후 줄곧 긴축을 고수 중인 유럽이 한 예다. 사실 20세기 중반만 해도 국가의 재정정책은 경기부양과 사회적 균형 달성의 수단 중 하나였다. 국가가 단기 적자를 그리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1980년대에 이르러 이 논리는 ‘국가재정=가정살림’이라는 수사 앞에 무력화된다.
저자는 이 동일화 논리의 취약성을 논파하는 데 적지 않은 공을 들인다. 국가의 살림에 적자와 부채가 생기는 원인과 처방은 가정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가정 경제가 빚에 시달리는 이유는 소득 부족과 지출 과다, 가정 성원들의 절제 부족 등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처방도 간단하다. 지출을 줄이고, 소득을 늘리고, 현금을 확보하고, 고통을 감수하면 된다. 이른바 ‘허리띠 졸라매기’다.
하지만 국가 재정 문제는 상황이 다르다. 기업·가계·금융 부문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체계를 이루는 탓이다. 국가 재정이 흑자여도 기업·가계·금융 부문이 적자일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한 나라의 부를 관리함에 있어 이 네 부분의 유기적 관계를 다각적으로 살피는 건 필수이므로, 정부의 재정적자와 부채만을 따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 ‘방만한 사회복지 지출’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만이 재정적자의 유일의 해결책이라는 주장은 이 때문에 설득력을 잃는다.
긴축을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로 보는 대목은 이 책의 주된 포인트다. 그 이유를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를 들어 설명한다. 월가의 탐욕과 부패가 빚은 금융시스템 붕괴의 서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원인이 미국의 방만한 재정지출로 인한 게 아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려 그 반대였는데, 미국 정부는 부패한 월가의 잘못을 고스란히 떠안았고, 막대한 세수로 소수 금융 재벌들의 손실을 메워줬다. 저자는 소수 엘리트 계층이 초래한 잘못을 애먼 사회 성원들의 고통 분담으로 해결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한다.
긴축이 ‘거대한 이데올로기’라는 주장도 흥미롭다. 저자는 긴축의 위험성이 그 자체 오작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며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긴축과 관련된 사실관계들이 정치인과 미디어에 의해 근본적으로 오도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긴축이 ‘씀씀이가 헤픈’ 국가들이 야기한 ‘국가부채 위기’의 대가인 듯이 말한다.” 은행들이 빚은 위기를 ‘국가부채 위기’로 부르는 것 자체가 ‘교묘한 속임수’ 정치 때문이라는 거다. 저자가 볼 때 현재의 주류경제학은 긴축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금융 자본가의 잘못을
담고 있는 정보가 방대하고 논리가 치밀해 쉽게 독파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축에 대해 상당히 명료한 분석을 내놓고 있어 도전 가치는 충분하다. 폴 크루그먼과 배리 아이켄그린 등 전 세계 유명 경제학자들이 만장일치로 찬사를 보낸 책이다.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