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는 갔고, 사임당이 왔다.'
'현모양처 아이콘'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을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문화계 안팎에서 거세다. 조선의 대학자인 율곡 이이를 비롯해 7남매를 키우고 한량인 남편을 내조했던 사대부 여성의 삶이 지금껏 우리가 귀에 닳도록 들었던 사임당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젠더'와 '페미니즘'이 문화계 담론을 주도하면서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은 여인상으로 사임당이 재해석되고 있다.
재조명 열기에 불씨를 지핀 것은 한류 스타 이영애와 송승헌이 출연해 주목을 받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다. 26일 첫방송에서 2회분을 파격편성해 인기몰이에 나선다. 총 30부작으로 한류의 선봉작이었던 '대장금' 이후 13년만에 이영애의 브라운관 복귀작으로 일찌감치 이목을 끌었다. 이영애는 한국 미술사를 전공한 대학 강사와 신사임당의 1인 2역을 맡는다.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의 일기와 미인도에 얽힌 비밀을 추리기법으로 풀어 나가는 과정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려낸다.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퓨전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한류콘텐츠금지령)에 막혀 동시 방영은 불발됐지만 중국 외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제2의 한류 바람을 일으킬 지 주목된다. SBS 관계자는 "9개국에서 동시방영되고, 14개국에 이미 판권이 판매됐다"라며 "제2의 대장금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미술계 역시 사임당 재조명 분위기에 앞장서고 있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은 개관 5주년 특별전으로 사임당 작품 15점을 공개하는 '사임당, 그녀의 화원'전을 24일 개막한다. 각각 10폭과 4폭의 '초충도(草蟲圖)' 두 세트와 사군자 중 하나인 '묵란도(墨蘭圖)' 15점을 전시한다. 15점의 작품을 개별 유리로 둘러 싸 관람객이 코 앞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띈다.
사임당은 풀과 곤충을 함께 그린 '초충도'의 전형을 그린 천재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생가이자 친정인 강릉 오죽헌의 뜰에서 피어나던 맨드라미와 채송화 뿐 아니라 가지, 오이, 수박을 그렸고 그 옆에서 노닐던 나비와 방아깨비, 개구리, 쥐, 풀벌레 등 온갖 동식물들을 간결한 구도와 뛰어난 색채 감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대 화가들의 주제인 '꽃 중의 꽃' 모란이나 불교의 깨달음을 전하는 연꽃을 그리기보다는 주변과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속에 깃든 아름다움을 그렸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하찮고 시사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은 것부터가 시대를 앞서간 천재성이 보이는 것"이라며 "사임당의 그림은 서민들의 삶을 그렸던 김홍도의 풍속화로 이어졌고, 후대 민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그림마다 다산과 자손번창, 장수, 출세 등 기복적인 의미를 담아 당시 선비들 사이에 선물용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2005년 KBS 'TV쇼 진품명품'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묵란도'도 공개돼 관심을 끈다. 율곡 이이의 제자였던 우암 송시열의 '송자대전'에서 발췌된 글이 그림 위에 붙어 있다. 전시장에는 각각 아들과 어머니의 초상이 그려진 5000원권과 5만원권 지폐도 진열돼 있는데, 화폐에 그려진 도상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오죽헌에 소장돼 있는 초충도의 이미지를 합성한 것이다.
사임당 작품으로 전해지는 그림에는 낙관이 찍힌 것이 한 점도 없다. 당시 그림 그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가 있었고 바깥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여성이었던 만큼 일부러 낙관을 찍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고 학계는 보고 있다. 그래서 사임당 진품이라는 표현보다 '전칭작(傳稱作)'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초충도 뿐 아니라 안견을 잇는 대표 산수화가라는 기록도 있는 만큼 사임당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점가에서도 사임당을 소재로 한 책들이 지난해부터 연이어 쏟아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사임당의 진면모를 잘 담아낸 이순원의 정본 소설 '사임당'과 신아연의 '사임당의 비밀편지', 유현민의 '사임당', 최정주의 '사임당', 만화 컬러링북인 오순경의 '사임당 빛의 일기' 등이 잇따라 출간됐다. 지난해 출간된 것들과 합하면 관련 서적은 30여권을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이순원의 '사임당'은 사임당의 본명으로 알려진 '신인선(申仁善)'에 대한 쟁점부터 '율곡 이이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온전히 평가 받지
[이향휘 기자 / 김명환 기자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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