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와 어두울 땐/ 당신 모습이 그리울 땐/ 바람 불어와 외로울 땐/ 아름다운 당신 생각/ 잘 사시는지/ 잘 살고 있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샛노란 자전거 한대가 가만히 세워져 있는 연갈색 작은 건물 앞. 계절은 겨울이고, 검은 롱코트 차림에 목도리를 둘러맨 여배우 영희(김민희)가 담배 한 개비를 오른손에 쥔 채 홀로 서 있다. 잔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여배우의 몸은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리고, 속삭이는 듯한 애수 서린 노랫말이 그녀의 입가로 천천히 울려퍼진다.
카메라는 그런 영희의 전신을 물끄러미 정지화면으로 지켜보다, 어느덧 줌인되어, 한발짝 그녀 앞으로 다가선다. 사연많은 여자의 상념에 잠긴듯한 표정. 카메라는 마치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많이 아팠구나, 너…." 알듯 모를듯한 슬픔의 물기가 백지 위의 먹물처럼 서서히 번져가는 느낌이다.
홍상수 감독의 19번째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13일 오후 언론시사회에서 국내 처음 공개됐다. 지난 2월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돼 배우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다. 홍 감독과 김민희 간 '불륜 스캔들'로 인해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유부남 영화감독에게 사랑에 빠진 여배우 영희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2부로 분절돼 있다.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1부와 한국의 강릉을 배경으로 한 2부. 1부는 영화 감독 상원(문성근)을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피하고자 함부르크로 가게 된 영희의 이야기다. 어느 지인과 도심을 거닐며 상원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영희는 혹시나 그가 유럽에 올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노랫말로 출발하는 2부에서는 친구를 만나러 강릉에 간 영희가 상원을 향한 감정을 고민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주 단순한 거지만, 깊이 들어가면 아주 복잡한 거야." 영화 속 어느 인물이 내뱉는 말이다. 홍상수 자신이 세상을 향해 건네고 싶은 말은 아니었을까. '당신들은 우리의 사랑을 불륜으로 폄하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사랑이란 아주 복잡한 거야'라는. 영화는 연애의 끝을 받아들이는 여배우를 매우 우아하고 섬세하며 이분법적으로 분석해낸다. 현실과 꿈과 환상이 뒤섞이고 종래에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초현실주의적 색채는 여전하다.
홍상수는 전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저절로 이루어진 사랑을 노래했다. 그간의 영화들과 달리 일원화된 공간에 머물며 일상에 내재한 기적의 순간들을 포착해내려 했다면, 이번에 그는 다시 생활반경에서 이탈한 다른 공간으로의 여행을 택한다. 두 공간을 오가며 그가 천착해온 외로움, 회한, 사랑의 가치들이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게 변주된다. 물론 그 중심에는 영희를 연기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 영희가 되어버린 김민희가 있다.
남다은 영화평론가는 "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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